김혜자씨는 자그마한 체구와 곱상하니 갸름한 얼굴이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러고 보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5일 기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마련한 2010년도 베스트 시상식이 열린 센추리시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김씨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콧등이 시큰해졌다.
김씨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이 영화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로 뽑힌 올리비에 아세야스의 ‘칼로스’에 이어 차점작)로 할리웃의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최우수 주연 여우로 선정됐는데 LAFCA 사상 동양인이 주연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우쭐해졌다.
식이 시작되기 전 이 날 ‘마지막 기차’로 기록영화상을 탄 중국의 리신 환 감독을 만났다. 이 영화는 설을 맞아 귀향하는 도시 근로자들의 대규모 이동을 그린 감동적인 작품.
나는 리신에게 “당신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있는 일”이라고 말하자 그는
“얼마 전 이 영화를 한국에 가지고 갔을 때도 관객들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현재 이 영화의 중국 내 상영을 위해 당국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생애업적상을 받은 폴 마주르스키 감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상의 왼쪽 깃에 흰 리번을 달고 있었는데 이는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년형과 20년 활동 금지령을 받은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지지하는 표시다.
마주르스키는 내게 “20년 활동 금지라니 할리웃보다 더 나쁘다”면서 “나는 지금까지 9년간 일을 못하고 있다”고 능청을 떨었다. ‘셰인’에 나온 앨란 래드의 아들이자 제작자인 래드 주니어와 원로 코미디언 멜 브룩스와도 악수를 나누고 통성명을 했다.
봉준호와 나란히 앉은 검은 드레스의 김씨(사진)는 소감을 묻는 내게 “지난해 말 내가 최우수 배우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사실이 아닌 줄 알았다”면서 “권위 있는 비평가협회로부터 상을 받게 돼 정말로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가 “이게 모두 떠오르는 최고의 감독인 봉준호씨 때문”이라고 말하자 봉 감독도 “나도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땐 충격적이었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면서 서로 상대를 추켜세웠다.
‘전원일기’에서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의 모습을 보여준 김씨는 이 날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수줍어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는데 시상식에 LA 인근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딸과 사위 및 세 손자와 손녀를 대동하고 참석했다.
식이 시작되기 전 LAFCA 동료 회원들이 김씨를 찾아와 그의 연기를 칭찬했는데 베테런 회원인 마이론 마이셀이 “세상에는 베스트란 단 하나밖에 없는데 당신이 바로 베스트”라고 말하자 김씨는 얼굴을 붉히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날 김씨에게 상패를 전달한 월스트릿 저널의 평론가로 퓰리처상을 탄 조 모건스턴은 소감을 통해 “김씨는 자신의 자식이 고통 하는 것을 보고 있는 모든 어머니로 그의 연기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뒤집어놓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김씨는 본보 양승진 기자가 통역한 인사말에서 “젊었을 때 읽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는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라는 말이 있는데 비록 여자는 약할지 몰라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씨는 마지막에 가슴에 손을 얹고 영어로 “댕큐 베리 머치”라고 답례, 다시 한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상식 후 내가 김씨에게 근황을 묻자 김씨는 “요즘에는 TV와 영화 활동을 중단한 상태로 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역이 없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김씨는 이어 “주어지는 역이 하나 같이 ‘전원일기’ 속 인물처럼 늘 같은 것”이라면서 “새롭고 내게 맞는 역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전원일기’의 콤비 최불암씨와는 가끔 만난다고.
한편 대학 동아리 시절부터 김씨의 팬이었다는 봉 감독은 “김혜자씨와 다시 함께 영화를 만들어 오는 2014년에 개봉하겠다”고 다짐했다. 봉 감독은 현재 유타의 파크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선댄스 영화제의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으로서 그 곳에 머무르고 있다.
김씨는 시상식 전 코리아타운에서 가진 한국 언론과의 회견서 “영화 속의 엄마는 자식 사랑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엄마로 광기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식 때문에 미칠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엄마”라고 말했다. 김씨와 나의 엄마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엄마 ‘만세’다.
나는 김씨에게 “앞으로 TV든 영화든 꼭 활동을 재개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작별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