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년 벽두부터 나의(?) 잘못을 뉘우치는 까닭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2011년도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작 중 하나로 뽑은 로맨틱 스릴러 ‘투어리스트’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달 중순 이 영화를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상 후보로 선정한데 이어 영화에 나온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를 각기 남녀 주연상 후보로 발표하자 온갖 미디어는 일제히 “염치없고 터무니없는 스타파워에 눈 먼 멍청한 짓거리”라고 공격을 했다.
나는 이 영화와 두 배우에 투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HFPA 회원으로서 미디어의 모멸적인 비난을 받자니 속이 편치가 않다. 미디어가 우리를 비난하는 까닭은 이 영화가 비평가의 혹평과 함께 관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 영화와 뎁과 졸리의 연기를 신통치 않게 여긴 터여서 HFPA의 발표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미디어의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우리 회원들 중 누가 이 영화와 두 배우에게 투표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든 글로브상 코미디/뮤지컬 부문에는 자주 비평가와 전문가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과 배우들이 수상 후보로 오르곤 한다. 이 카테고리는 오스카상 후보들을 점칠 수 있는 드라마 부문의 사이드 쇼라고 생각하면 된다.
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는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카테고리로 나누어 시상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부터 작품상 후보를 10개로 배증한 오스카상의 귀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투어리스트’가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 작품상 후보로 오른 것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해에는 뛰어난 코미디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미디어는 어떻게 ‘투어리스트’가 코미디이냐고 반박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이 영화는 히치콕 스타일의 가벼운 코믹 터치의 스릴러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가 상당히 멍청해 본의 아니게 코미디가 됐다고 여겨도 좋다.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로 오른 것까지는 봐 준다 치더라도 뎁과 졸리가 주연상 후보로 오른 것은 나로서도 이해 난감이다. 이 경우에 대해선 HFPA가 스타파워에 눈이 멀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그런데 우리 회원들은 자니 뎁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둘을 주연상 후보로 뽑은 데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본다. 골든 글로브상은 물론 질적으로 우수한 한 해의 베스트를 뽑기도 하지만 오스카상과는 달리 스타 위주의 파티행사 성격이 강하다.
시상식도 기라성 같은 영화와 TV(골든 글로브는 TV 부문에도 시상한다) 배우들이 한데 모여 앉아 먹고 마시는 가운데 진행된다. 그래서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웃 최대의 쇼라고 불리고 또 스타들도 이런 여유 있게 즐기는 분위기를 좋아하고 있다.
할리웃 최고의 두 수퍼스타 뎁과 졸리는 이런 쇼의 왕관과도 같은 존재라고 하겠다. HFPA로서는 이 둘이(졸리 곁에는 또 다른 수퍼스타 브래드 핏이 따라 다닐 테고) 레드 카펫을 밟는 장면이 NBC-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 시청률 제고와 함께 쇼가 더 한층 눈부시게 광채를 낼 것이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HFPA가 ‘투어리스트’의 뎁을 주연상 후보로 뽑자 미디어는 우리가 뎁에게 이중으로 아첨한다고 비난했다. 왜냐하면 뎁은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도 주연상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뎁은 한 카테고리에서 두 번이나 주연상 후보로 오른 것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매드 해터 역을 한 뎁을 주연상 후보로 뽑은 것은 비난할 일이 못 된다. 나도 이 역에 대해선 뎁에게 투표했다.
미디어는 또 우리가 두 가수 셰어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공연한 ‘벌레스크’를 코미디/뮤지컬 부문의 작품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이 영화 역시 비평가와 관객의 달갑지 않은 반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에 뚜렷이 훌륭한 뮤지컬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노래와 춤으로 엮어진 순수 뮤지컬인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로 오른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한편 뎁은 HFPA가 자기를 두 번씩이나 주연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감사의 뜻을 표해 왔다.
‘한 번만 후보로 지명돼도 큰 영광인데 두 번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HFPA의 친절과 관대함에 말문을 잃었다. 나는 HFPA 회원들과 함께 이 영화를 가능케 만든 여러 훌륭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는 오는 16일에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발표될 각 부문 베스트에 대한 투표를 이미 마쳤다. 그러나 ‘투어리스트’와 뎁과 졸리에겐 투표 안 했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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