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모두 사생활이 있으니 오늘은 저녁 식사만 학교 동창 몇 명과 약속했고 낮에는 혼자 지내기로 했다. 느긋하게 서울 대학교 앞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으로 소문난 집에 가서 아침을 들었다. 내가 콩나물 해장국에 대해서 촌놈으로 보였는지 “콩나물 해장국에는 새우젓을 조금 넣는 것이지요” 하면서 손수 티 스푼 정도 넣어 준다. 과연 확 맛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나는 전철을 타고 국립 중앙 박물관이 있는 이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철에서 내려 박물관 앞에 서는 나는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각보다 규모가 무척 컸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열릴 G20 정상회담 전야 만찬이 열린다고 부산해 보였다. 진정 그에 어울리는 규모였다. 그리고 또 하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국립 박물관의 입장이 무료인 것이었다.
구석기 실에서 시작된 첫 방부터 “한눈에 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연표” 라는 대형 연표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다.
중요한 세계사적인 사건과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가로 줄로 하여 기원전 7,000년부터 년대를 적어 가면서 한 줄로, 그리고 그 가운데에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발굴된 자료를 연도별로 한눈에 보이게 하는 차트(설명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 지리, 고고학의 대가들이 총괄해서 만든 가장 권위 있는 차트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나는 고대 역사 환타지에 빠진 분들에게 꼭 좀 가보고 진정한 우리의 과거를 바로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과잉 자찬이나, 자기 도취에서 깨어 나야 하며, 더군다나 국수주의적 사고는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더 더욱 바람직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박물관 관람에서 새삼 내가 느낀 것 중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대 가야국이 520년 존재했으며 이는 백제 680년에 비교해 볼 때 그리 짧은 역사가 아닐진대 우리는 가야국을 너무 등한시 하는 역사를 배우지 않았나 싶고, 그래서 통일신라 전을 삼국시대가 아니라 4국 시대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구석기부터 시작하여 신석기, 청동기 하는 식으로 각 방을 만들어 시대별로 나열해 갔는데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의 낙랑유적 출토품 실이 해저 신안 문화재하고 각각 독립된 전시실 방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낙랑의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몇 시간 관람을 하고 나니 이미 오후 1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박물관을 나와 서둘러 상암 경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오후는 FC 서울과 경남과의 축구 시합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얼마 전 만났던 H라는 친구이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학창시절 서울 대학교 학생이 원더걸스 노래에 열광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겨우 고등학교나 다닌 애들인데, 그 애들이 Nobody but you 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나 알겠어?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였을꺼야, 하지만 이제는 서울 대학교 학생들이 고등학교 출신 또는 이름없는 대학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의 넘버가 달린 유니폼 자켓을 입고, 얼굴에 로고 페인트를 하고 운동장에서 소리 소리 지르며 옆에 사람들과 어깨 동무하며 응원을 같이하고 있어. 이것은 한국의 밝은 미래이고 희망이야.”
전철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바로 운동장 입구였다. 입구를 지나 스탠드에 들어서니 벌써 응원의 열기가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내가 감히 장담하지만 이쁘고 날신한 치어걸들의 춤은 워싱턴 레드스킨 치어 걸보다 훨씬 나아 보였고 모든 관중들은 이미 FC서울 팀의 응원가는 다 알고 있는 듯 모두 크게 합창하고 있었다. 두어시간 넘는 경기를 보던 아니, 따라 하던 응원은 나에게 진정 다시 솟는 젊음의 힘과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정 나에게 행복한 세시간이었다
경기장을 나와서 이제는 매우 익숙해진 전철을 다시 타고 강남 쪽으로 가서 저녁 약속이 되어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거의 열명의 친구들의 눈동자가 나의 시야에 비쳤다. 좋게 말하면 잔잔한 눈동자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맥 빠진 초점 없는 눈동자였다.
어찌 되었던 그런대로 오랜 친구의 만남이라 즐거운 회고의 대화가 이어져 갔다. 그러다가 그만 어찌 어찌해서 대화가 다시 그 놈의 박정희, 노무현, 4대강, 김정은, 박지원 등등 하면서 화제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마 오래간만에 마신 소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축구장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였을까? 나는 그만 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야 너희들, 늙는다는것이 병인지 모르냐? 그리고 지금 너희들 떠들어 대는것이 그 병이 꽤나 중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 야 너희들 그 놈의 이야기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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