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늘 불현듯 찾아온다. 문득, 국화가 피고 숲 속이 등불을 내건 듯 환해진다. 그러다가 또 된서리가 내리면서 늦가을이 오고, 천지에 분분히 눈이 내리면 돌이킬 수 없는 계절, 겨울이 된다. 그렇게 불현듯 오고 가는 것이 어디 계절뿐이랴. 세월뿐이랴. 행복했던 시간도 사랑했던 사람도 어느 아침, 그렇게 불현듯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마는 법이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여기저기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한국의 둥글고 어진 산을 좋아한다. 남의 자리에 함부로 팔을 뻗는 법 없이, 햇볕도 바람도 나누어 갖는 고만고만한 나무들을 키우는 산이 좋다. 슬픈 역사 속을 지나오며 가슴팍에 길을 내주고, 열매를 내주고, 땔거리를 내주며 통째로 비워지기도 했던 산들이다. 그 산들이 발치에 풀꽃을 키우며 다시 나무로 차오른 모습은 보기 좋았다. 연일 장맛비가 내리던 중이었는데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빗물에 풀어진 여름꽃들이 물감처럼 번지며 산으로 섞여 올라가는 모습이 정겨웠다. 사람이 건네는 천 마디의 말보다 무언중에 사람을 껴안는 산에게서 위로를 느끼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새로 뚫린 길 위를 지나거나 뚫고 있는 길 옆을 지나는 일이 많음을 깨달았다. 좁은 국토의 곳곳에 새 길들을 뚫기 위해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크고, 부족함이 없고, 빠른 것만을 성공적인 삶으로 규정지어 놓은 채 방향감각 없이 달리고 있는 듯했다. 길 위의 속도는 곱절로 빨라진 듯하지만 그 길 위에서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오히려 더 분주해진 건 아닌지, 우리는 모두 삶의 속도계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끔은 우리 삶의 풍향계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새 길을 달리면서, 빨라진 새 길의 근처에는 예의 한해살이 풀꽃들을 겨드랑이에 키우고 있는 가느다란 옛길이 따라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를 잃고 난 끝이라서 그랬을까? 저녁 노을 속에 따라오는 옛길을 바라보는 감회가 특별했다. 다소 구부러지고 에둘러 가고 느리기도 한 그 길이, 이제는 찾는 이 드물어 저녁 해 그림자만이 길게 누워 있었다.
그 저물녘의 풍경 속에 저 혼자서 꽃씨를 떨어트리고, 저 혼자서 꽃을 밀어 올린 철 이른 코스모스 몇 포기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애잔했다. 나는 내 시선의 끝을 따라 주춤주춤 따라오다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희끗이 모습을 드러내는 옛길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것은 혹 나의 아버지처럼, 별리된 후에야 바라보는 것들에게서는 사랑이 확인되어지는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야트막한 산맥 사이에 별처럼 박혀 있던 내 고향 작은 동네의 앞 경관에도 비대칭적인 고속도로가 생경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들판에 나락이 패기 시작하면 가로로 세로로 풀벌레가 튀어 오르던 농로는 대형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마늘 밭 옆을 지나 바깥마당에 이르는 고샅길마저 포장도로로 변해 있었고 장맛비만 내리면 떠내려가던 다리목도 이제 다시는 고칠 일이 없는 콘크리트 다리로 변해 있었다.
수세미 넝쿨이 샛노란 꽃을 몇 개 달고 기어 올라가던 돌담장 바깥 길에도 예의 그 콘크리트길이 깔려 있어 이제 제멋대로 떨어진 씨앗들이 저절로 싹을 내어 담장 밑에 꽃을 피우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시골에 옛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물처럼 여겨왔었다. 내 감각의 원초가 만들어지고 내 지각의 뿌리가 내려졌던 그 옛집을 찾아가는 일은 회상만으로도 행복했었다. 느리게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신작로에 내려서면 뽀얀 먼지가 걷히면서 멀리 작은 동네가 나타났었다. 풍경과 풍경 사이에 끼어 물 흐르듯 내려온 조붓한 길이 나타나고 납작한 질경이가 발 밑에 밟히는 좁은 길의 끝에는 달콤하게 밥 익는 냄새가 나던 집이 있었다. 그 집은 그믐밤에도 빗장을 걸지 않던 집이었다.
뒤란의 대숲에서 수런거리는 바람소리가 들리던 집, 잎사귀들이 떠나간 가지에 매달린 감들이 저절로 익어 터지던 집, 못생긴 간장종발과 달챙이 숟가락이 살강 안에서 단잠을 자던 집, 가물가물한 기억처럼 흑백사진 몇 장을 벽에 달고 있던 집, 바람이 일었다가도 잠잠해지던 마당귀가 있던 집, 빗물이 고여 있는 모스러진 돌절구에 달밤이 찾아오면 그 빗물 속에도 한 바가지의 달빛이 고이던 집, 그 달빛이 가끔은 문지방을 넘어와 내 이마를 짚어주기도 하던 그 집, 나는 그 따뜻한 집을 잃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를 잃으면서 그 집을 함께 잃은 셈이다. 폭, 하고 신발 밑에서 터지며 씨앗을 터트리던 질긴 생명력의 질경이가 자라던 길, 나는 그 순한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일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잃고부터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초승달을 보며, 하현달을 보며, 초승이 그믐이 될 때까지의 하늘에도 길이 있고 순서가 있음을 깨닫는다. 보름달은 초저녁부터 뜨고 하현달은 한밤중에 뜨며 그믐달은 새벽이 되어야 뜬다. 또한 달은 날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하늘에는 천 년을 두고 변하지 않는 길이 하나 흐르고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별이 별에게로 가기 위해 새 길을 내지 않으며 달이 느린 제 걸음을 재촉하는 법도 없다.
겨울시간으로 바뀌고부터 퇴근길은 아주 깜깜해졌다. 오늘도 집으로 오는 길의 하늘엔 도톰하게 살이 오른 반달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를 따라 발맘발맘 쫓아오던 달은 키 큰 건물의 뒤에 숨기도 하고, 가로등 밝은 큰길에서는 비켜나 있기도 하다가 집에 다다라서는 건너편 자작나무 숲에 숨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며 등 뒤로 다가오는 달의 기척에 나는 돌아서며 말을 건넸다. 아버지, 추워졌어요. 그럼 추워질 때지, 상강이 지난 지 오래니라, 달빛에도 튀밥처럼 꽃을 피우던 지상의 모든 꽃들이 된서리에 사라질 시기란다.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이 가깝구나. 이제 곧 메밀꽃 같은 첫눈이 내리며 첫추위가 올 테지. 소설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 했느니라. 따숩게 입고 다니거라.
불을 내리고 잠이 드는 밤, 뜰에는 불현듯 하얀 된서리가 내리고 건너편 자작나무 숲에는 할머니의 동구리 속, 동그란 얼레빗을 닮은 반달 하나가 밤새도록 노랗게 걸려 있다.
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