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꺼멓게 멍들어 있던 왼쪽 가운데 발톱이 딱정벌레의 남루해진 갑옷처럼 헐렁거리더니 어느 순간 떨어지고 없다. 그 자리에 선붉은 살이 다시 갑옷 모양으로 보들보들하게 자리를 다져가고 있다. 거무틱틱하게 물들어 가던 발톱이 보기 싫어 새빨간 색으로 칠해 볼까하는 궁리도 해보았지만 이내 그만 두고 말았다. 나답지 않은 치장 같아서였다. 옛 것이 가고 새 것이 들어서는 그 자리를 보고 있자니 옴싹옴싹한 바위에 둘러싸인 지리산 청정골 민박집이 생각났다. 그 민박집 앞에 흐르고 있는 냇물에는 다슬기가 바위를 지붕 삼아 살고 있었다. 그 청정 환경이 오염된 내 몸의 일부를 씻겨내듯이 가운데 발톱을 상징적으로 앗아갔다.
지난 여름 한국 방문 중, 시집 조카며느리의 안사돈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사돈 운운하니 내가 마치 노인네 같은 생각이 들지만, 순전히 항렬이 그어준 비애다). 그 안사돈과 나는 약 이 년 전 안사돈의 미국 방문 중에 첫 상면을 하게 되었다. 거의 어머니뻘에 가까운 안사돈의 나이도 무시한 채 우린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쪼르륵 딸만 넷을 키우신 안사돈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셨다. 사소한 기쁨에도 소녀처럼 까르륵거리신다. 사위 넷을 아들처럼 다독이며 정겹고 따뜻하게 이름을 부르신다. 그런 안사돈이 함께 등산을 가잔다. 난 철없는 아이처럼 그 제의를 덥석 받아들였다.
안사돈이 속해 있던 산악회원들과 지리산 둘레길 산행에 나섰다. 한국 산악인들의 등산 준비물이 무엇인지 백 퍼센트 무지한 상태에서 배낭 하나 덜렁 메고 뒤를 따랐다. 집에서 신던 지극히 평범한 운동화에 가벼운 평상복 차림으로 나선 산행은 곧 고행이었다. 하지만, 밭둑에 늘어선 생전 처음 보는 야생화의 쌩긋거림은 고행을 여행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지리산의 품은 넉넉했다. 산기슭을 타고 달려 내려오는 청정 공기. 계절의 재촉에도 늑장을 부리다 아직 피지 않은 갓난 아이의 손길처럼 보드라운 고사리. 험한 계곡도 마다하지 않고 흘러와 타는 목 축여주는 대롱통 약수. 울퉁불퉁한 산길 옆에서 붉은 입술 뽐내며 서 있는 산딸기. 수철 마을 외딴집의 노수(老樹) 세 그루. 그 노수 아래 모여 앉은 흙같은 사람들.
살아가면서 주위에 성품이 넉넉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괜히 하루가 즐겁듯이, 온종일 지리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있다 보니 열 두어 명의 산악회원들 모두 오랜 세월 함께한 듯한 친근감이 감돌았다. 안사돈과 난 우리가 서로 사돈지간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재잘거렸다. 급기야는 사돈 옷까지 빌려 입고 횡횡거리며 함께 돌아다녔다. 바깥 사돈은 우리의 그런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대학 내에서 서점을 운영하시는 안사돈은 책을 바리바리 싸서 미국으로 보내주셨다. 그 정성과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자필 서신을 보내기로 맘을 먹었다. ‘신속’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21세기의 ‘신속 문화’를 이탈하니 정성이란 꼬리표가 달랑 붙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칠팔십 년대로 돌아가 백지에 까만 볼펜으로 또박또박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틀리면 이메일처럼 쉽게 고쳐 쓸 수 없기에 한 글자 한 글자의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봉투도 일부러 침을 발라 봉하는 걸로 준비했다. ‘국제우편’이라는 단어를 겉봉에 쓰고 나니 가슴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뭐든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생활에 천천히가 가져다주는 여유로움이 이런 행복을 보너스로 갖게 될 줄은 미처 예기치 못했던 부분이다.
그렇게 우리의 사돈 펜팔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칭이 문제였다. 매번 누구 누구의 외할머니 혹은 누구 누구의 친정 어머니로 쓰자니 호칭이 너무 길었다. 그런 나의 수고를 알아차리신 안사돈은 ‘호칭 간소화’를 제안하셨다. ‘정 언니’와 이샘. 물론 자필 편지에서만 사용 가능한 호칭이다. 이제 사돈과 나의 편지는 격식 공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지리산 여행을 통해 ‘사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겉치레를 버리고, 그 단어가 연결해 주는 인연을 통해 생의 새로운 동반자를 얻게 되었다. 동반자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성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가을 낙엽도 아름답다
채수희(수필가 )
미국 어느 작은 도시에서 불의의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시력을 잃고 실의에 빠져 망연자실( 茫然自失)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은 청년을 시각장애자를 교육하는 학교에 보냈다.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다보면 삶의 의욕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학교에 도착하자 교장 선생님은 한 선생님을 불러 학교건물과 교정 곳곳을 소개해 주라고 했다. 친절한 선생님은 청년의 팔을 잡고 복도를 지나 학교 현관, 입구, 계단 등을 안내했다. 계단은 열 개라고 가르치는 친절한 선생님 안내에 청년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숙소로 돌아온 청년은 선생님에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 같은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시는군요.”
그러자 선생님은 “물론 학생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사람의 역경 속 감동은 사랑과 세상을 움직인다. 그래서 누구나 오늘의 역경과 고난은 참을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삶은 하나의 강이다’ 라는 말이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필요하듯이 삶을 순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베풀며 또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혼자 살 수는 없다.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비로소 생활이 존속(存續)된다. 결국 인간은 혼자서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약하고 외로운 존재다. 어떤 관계이든지 서로 포용하고, 충고하고,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우정은 물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서로 나누며 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이를 도우려면 본인 자신부터 가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음을 비우고 진심을 다하라는 얘기다. 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사람을 사귀게 되지만 특별히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낙엽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봄날의 꽃이 아름답지만 지는 낙엽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퇴색하는 아픔 속에서 끝내는 자기를 버리는 낙엽의 겸손함, 자연의 이치는 삶의 이치다.
만추의 이 계절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때로는 인생무상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도 정말 오늘을 충실히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성을 향한 노력이 중요하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역경과 고난도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자. 그것이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상념(想念)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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