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알렌(74)은 행복해 보였다. 그의 자태에선 만족한 결혼생활을 하는 남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된 기운이 감돌았다.
우디는 이 모든 것이 아내 순이(39)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우디가 지난 1992년 자기 애인 미아 패로의 양녀로 대학생이던 순이와 연애를 하는 것이 들통이 나면서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을 얻어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둘의 관계는 매우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지난 12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유 윌 미트 어 톨 다크 스트레인저’를 출품한 우디를 만났다. 작은 체구에 큰 코와 안경을 낀 겁을 잔뜩 먹은 듯한 눈 그리고 숱이 적은 백발의 우디의 얼굴은 실존적 고뇌의 상징 같았다.
질문에 소곤대듯 위트가 넘치는 대답을 했는데 시치미를 뚝 떼면서 농담을 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의 농담 속에는 철학과 예지가 가득했는데 놀란 토끼눈을 한 착한 아저씨 같아 친근감이 갔다.
나는 우디에게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순이의 근황을 물었다.
우디는 “순이는 잘 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난 고아로 어릴 때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다”면서 “지금 순이는 세련된 뉴요커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 아름답고 스타일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순이는 친구가 매우 많으며 우리가 입양한 두 딸을 잘 키우고 있다”면서 “그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만개했다”고 알려 줬다. 우디는 “내가 삶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순이의 삶을 활짝 피워 준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순이의 탓이나 나도 조금은 크레딧을 받고 싶다”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 아내를 얻게 된 것은 행운”이라면서 “내가 젊었을 때 누군가 나보고 너는 너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아시안 여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면 미친 소리 말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우디가 순이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우디는 스스로를 사회의 부적격자라 부르는 염세주의자. 그의 이 번 영화 처음과 끝에 자막으로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맥베스’의 대사 ‘삶은 무의미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가 그의 인생철학이다. 물론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믿지 않으면서도 우디는 매우 활동적이요 근면하며 또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사람인데 매년 영화를 1편씩 만드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디는 매년 1편씩 영화를 쓰고 감독하는 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면서 영화를 만들고도 얼마든지 가족과 함께 삶을 즐길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뉴요커로 철저한 도시인인 우디의 매력은 도시의 정서와 도시인들의 삶의 편린을 아끼면서 희롱하듯 통찰하고 있는 점. 또 몹시 사적인 그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아픔과 고독을 신랄한 위트와 냉소적인 지성 그리고 멜랑콜리한 낭만적 터치로 묘사하는데 그의 이런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몽롱하게 아름다운 ‘맨해턴’이다.
우디는 자신의 장점을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검소하며 잘 먹는 점이라면서 많은 작가들은 뮤즈가 있지만 자신은 혼자 고독히 땀을 흘리면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믿지 못할 벌레’라고 자기비하적 농담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여자형은 필름 느와르와 B-무비에 나오는 다소 싼 여자라면서 오드리 헵번보다는 마릴린 먼로를 선택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환상 속의 바람일 뿐으로 실제로는 매력적이요 지적이며 친절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여자를 원한다면서 그런 여자가 바로 순이라고 아내를 다시 찬양했다. 우디는 순이와의 결혼이 세 번째 결혼으로 이번이야 말로 운이 잭팟을 터뜨려 이뤄진 결혼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신작을 비롯해 우디 영화의 많은 남자 주인공들은 바람을 피우는데 그는 이에 대해 “부정을 비롯해 모든 허튼 짓들은 그 짓의 당사자들이 그것을 숨기고 또 그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느라 그 압박감에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 우습기 때문에 소재로 즐겨 쓴다”라고 들려줬다.
스스로를 미신적이라면서도 과학만 신뢰한다는 우디는 지압은 물론이요 대체 치료법이나 약 같은 것도 완전히 불신한다고 한다. 무서워하는 것은 비행기 타는 것. 재즈 클라리네티스트인 우디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45분부터 뉴욕의 칼라일 호텔에서 재즈밴드와 함께 연주를 한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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