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는 가을 기운으로 엷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바람부터 달랐다. 지난 9~14일 참석한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는 강행군이었다.
짧은 기간에 인터뷰를 한 스타와 감독은 무려 총 27명. 우디 알렌과 대니 보일 등 감독이 6명 나머지는 헬렌 미렌, 콜린 퍼스, 하비에르 바르뎀 및 밀라 요보비치 등 배우들.
아침부터 인터뷰하고 영화 보고 저녁에는 영화사에서 마련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코피 나는 일정이어서 나를 비롯해 함께 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꾸벅꾸벅 졸았다.
북미 최대의 영화제인 TIFF는 오는 수상 시즌에 내보낼 만한 영화들이 대거 출품되는데 여기서 오스카상감 영화들이 발견되곤 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작품 및 연기 등 여러 부문에서 뚜렷이 오스카상 후보로 낙점을 받은 영화가 영국 영화 ‘왕의 연설’이다. 1936년 영국 왕 에드워드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내놓으면서 이를 물려받은 말더듬이 조지 6세(콜린 퍼스)와 괴짜요 과격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제프리 러시)의 관계를 그린 감동적인 드라마다.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의 관계는 마치 헨리 히긴스 교수와 시장에서 꽃 파는 일라이자 두리틀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데 퍼스와 러시가 황홀한 연기를 한다. 올 들어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인터뷰 하면서 몇 차례 한국 칭찬을 들었다. 한국 영화는 이제 세계가 알아줘 인터뷰 때마다 기자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면 자주 칭찬을 듣긴 하지만 들을 때마다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다.
‘왕의 연설’의 러시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깡촌 술꾼으로 출연한 장동건 주연, 이승무 감독(이어령씨 아들)의 칼부림 액션 영화 ‘무사의 길’에 관해 물었다. 러시는 두 손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서 “내가 어쩌다 코리안 웨스턴에 나오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면서 “이승무 감독은 정말로 독창적인 감독으로 특히 이 영화는 시각미가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또 스파이 스릴러 ‘빚’의 감독 존 매든도 기자에게 “나는 봉준호와 친구 사이”라면서 “‘마더’는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당신은 키 크고 다크한 낯선 사람을 만날 겁니다’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만든 우디 알렌은 기자가 그의 아내 순이의 근황에 관해 묻자 길고 자상하게 순이에 관해 말했다.
순이가 고아로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살다가 이젠 뉴욕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여러 면에서 지적인 사람이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뉴욕생활을 즐기며 잘 살고 있다고 자세하게 알려 줬다. 그리고 자기(74)가 40세인 아시안 여자와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둘은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솔직함에 감동을 받았다.
가끔 스타들과의 인터뷰 때면 만나는 한국인 메이컵 아티스트인 소니아 리씨가 제프리 러시와 앤드루 가필드(‘네버 렛 미 고’)의 화장을 위해 영화제에 왔다. 경력 20년의 소니아씨는 LA와 뉴욕을 왕래하면서 활동하는데 그가 단장해 주는 단골배우들 중에는 앤소니 합킨스와 크리스 쿠퍼와 틸다 스윈튼 등이 있다.
이번 영화제서 받은 가장 큰 감명은 영화 ‘127시간’의 주인공의 실제 인물인 아론 랄스턴(사진)을 만난 것. 모험가인 랄스턴은 지난 2003년 혼자서 유타로 암산 등반을 갔다가 좁은 암벽 사이에서 오른 팔이 굴러 내린 큰 돌에 끼여 무려 127시간을 탈출하려고 사투를 하다가 무딘 포켓용 칼로 자기 팔을 잘라내고 밖으로 나왔다.
영화에서 랄스턴 역은 제임스 프랑코(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가 했는데 그가 팔을 잘라내는 장면은 눈을 가리고 봤다.
랄스턴은 모험가라기보다 얌전한 학생 같았다. 앞부분이 절단된 그의 오른 팔을 보면서 영화 장면이 생각 나 몸서리가 쳐졌다. 죽음에서 돌아온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이 거의 초현실적인 기분을 자아냈다.
랄스턴은 쾌활하고 상냥하게 자기 경험을 들려줬는데 “내 얘기가 절망적인 순간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게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아직도 그 때 경험과 다투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랄스턴에게 “당신은 용감한 것이냐 아니면 미친 것이냐”고 묻자 그는 “둘 다였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현장에 매년 찾아가는데 “바위에 깔렸던 팔은 회수, 화장해 그 재를 현장에 뿌렸다”면서 “그것은 내게 하나의 의식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TIFF는 이번 영화제 동안 다운타운에 세계 최대의 시네마 컴플렉스를 개관했다. 영화제의 본부가 될 이 컴플렉스 개관을 기념해 TIFF가 선정한 ‘필견의 100편’을 상영하는데 박찬욱의 ‘올드 보이’가 99번째로 올랐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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