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가장 길고 지루했던 6주간의 기간이라면 둘째 녀석이 9학년을 마치고 여름 음악캠프에 가 있던 4년 전 여름이다.
둘째는 별로 내켜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전에 형도 여름음악 캠프를 다녀온 것을 보았기에 큰 불평 없이 바이올린을 들고 떠났다. 아니 사실 타 주에 가서 6주간을 혼자 보낸다는 게 본인에게는 꽤 흥분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둘째가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를 전공했던 제 엄마로부터 피아노를 얼마 배우다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역시 피아노 배우던 것으로부터 중도하차 후 첼로를 하고 있었던 형과 아마 경쟁을 피하려고 첼로 외의 다른 악기를 선택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둘째가 캠프에 가 있던 6주간의 기간이 필자에게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 몰랐다. 큰 애가 여름캠프를 갔었을 당시에는 사실 그보다 더 긴 8주간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때는 그 8주가 그렇게 길다고 느끼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가 막내라서 그랬던 건지 이상하게도 둘째 녀석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달력을 확인하면서 ‘언제 6주가 다 지나가나’ 하면서 느꼈던 조바심은 예전에 집사람과의 연애시절 때 데이트 하는 날 기다리던 것보다도 더 힘들게 느껴졌다.
글쎄 그게 내리사랑이란 것이었는지 아니면 집에서 항상 어리게만 생각했던 막내가 비워 놓은 자리의 허전함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가을이면 대학교 2학년이 되는 둘째를 그리워했던 그 때를 되새겨 보며, 필자의 부친을 떠올리면 너무 가슴이 아파온다.
필자의 부친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60년 전에 월남하신 실향민이시다. 고향은 황해도 해주. 당시 겨우 만 17세. 어려서 교직에 계셨던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셨다던 필자의 멋쟁이 할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님 밑에서 남동생 둘과 고생하며 사셨단다. 어머님을 도와 떡장사까지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학교를 마친 후 바로 중학교에 입학을 못하고 두 살 아래의 바로 밑 남동생과 같이 입학하셨다. 다행히 공부를 잘 하셔서 북한군이 압록강까지 밀려 갈 때 공화국 재건을 위해 꼭 살아남아야 할 유능한 학생들 중에 하나로 여겨져 전쟁터로 바로 보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세가 바뀌어 국군과 유엔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자, 장남의 신변을 오랫동안 걱정해 오셨던 필자의 할머니가 장남을 남하토록 한 것이다. 당시엔 국군과 유엔군의 후퇴가 작전상 일시적인 것이라고 발표되었던 것이기에 잠시 몸을 피하신다는 생각으로 부친은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 오셨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내려오실 때 까지는 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시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60년. 결혼, 파월 기술자 생활,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품은 미국 이민, 세 자녀와 5명의 손자들을 보신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부친은 당신의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의 생사 여부도 모른 채 언제 고향에 한 번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사신다. 그 사이 몇 번 이산가족 연락기관들에게 편지도 써 보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혹시, 좋은 소식 전해 줄 것이 없어 연락이 없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쓸쓸하게 말씀하실 때는 필자의 마음마저 저려온다. 열악한 북한의 식량, 의료 상황을 생각하면 아마 당신의 어머님은 물론 두 동생들마저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하시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것 같다.
아들 녀석 하나 여름캠프를 겨우 6주간 보내 놓고 기다리면서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아버님은 과연 어떻게 60년이란 세월을 보내셨을까. 눈물이 난다. 비극이다. 이런 비극은 지구상 어디에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연세가 들어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숫자가 줄어가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와 정치, 경제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 빨리 다시 고향 땅을 밟아 보실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날이 오면 6주간의 이별도 못 참아했던 못난 아들이 60여년을 기다리셨던 아버님을 직접 모시고 아버님의 고향 땅을 밟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