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현의 첫 시집 <부다페스트의 환생>
70이 넘어 첫 시집을 상재한 정두현 시인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와 충북 보은에서 성장해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의대 졸업 후 도미, 조지타운대 방사선과 조교수를 지내고 지금도 개업의로 천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코코란 미술대학, 아메리칸대 미술대학, 몽고메리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개인전, 그룹전을 가지기도 하면서 지난 3월에, 그동안 틈틈이 써온 58편의 시편들과 간간이 그의 그림과 곁들인 시집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 놓았다.
총 5부로 나누어진 정두현 시인의 시집 <부다페스트의 환생>에는 우리 민족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남긴 뼈아픈 가족사(제 5부 어머니는 낙타가 되어/부다페스트의 환생/ 빈 무덤)와 제1, 2부의 서정시편들 (한려수도/ 은회색/고향), 그리고 의술을 펼치는 생업의 현장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들(제4부 화전민/ 떡 한 시루)을 불러 시를 만든다. 제3부의 시편들 중 <두 개의 얼굴>, <백자> 그리고 부제, -로댕의 <깔래이> 순교자-가 붙은 <허쉬혼 조각공원에서>를 읽으면 그의 문학의 원천이 조각가로서의 오랜 창작활동에서 비롯됨을 알게 한다. 이역만리 동양미술품을 진열한 스미소니언 프리어 박물관에 나와 앉은 빈 <백자>에서 아픈 역사 속에 흰옷 입고 질곡의 삶을 견뎌온 한민족의 한을 읽어내고 문양도 없이 밋밋한 아름다움에서 조선의 수수하고 담백한 영혼을 만난다.
‘바이칼 호수에 살던 석기 시대 사람들/ 화강암 속에 자기 얼굴 하나 흔적으로 파놓고/ 반도로 들어와 정착했고/ 한 부족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왔다/ 뒤뜰에 무심코 새겨놓은 얼굴 하나가/ 내가 산 석기시대를/ 21세기 포토막 강가의 마을에/ 남겨 놓을 줄이야/ 피는 아무도 못 속여, 그렇지’ <두 개의 얼굴>의 한 부분이다.
시인이 어느 봄날 뒤뜰에 나가 화강석에 파놓은 얼굴하나의 조각 작품은 예술가가 심혈을 다해 작품을 완성해가는 피나는 과정에서 이미 자연적 또는 건축 석재용으로 존재하는 화강석이나 대리석 같은 차가운 돌이나 바위가 갖는 광물성 이미지는 소진된다.
끌과 망치를 매개로 대상과 화자가 만나 끝없이 소통하며 생명을 불어넣어 매서운 손끝에서 혼연일체가 되어 태어난 작품은 이런 따스한 광물성 상상력으로 시인의 관련 작품들이 수작의 수준을 획득하고 있다.
<두 개의 얼굴>을 따라가 보면 우리 한민족의 시원이 보이는 듯 도하다. 화자는 여행 중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알타이 돌장승을 만나 너무도 낯익은 모습에 놀라워하다가 이내 <피는 아무도 못 속여, 그렇지>하고 단호하게 귀결을 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추진되어 왔으나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시인은 믿고 싶은 것이다.
시베리아 몽골북쪽 거대한 호수 바이칼 남쪽에 살고 있다는 몽골계 브리야트족, 푸른 말갈기를 휘날리며 대 평원을 내달았을 그 유목민들을, 한국인과 유전자가 가장 가까운 종족인 브리야트족이 화강암에 자기 얼굴 하나 흔적으로 파놓고 한반도로 흘러들어와 정착했음으로 그 피에 끌려 시인도 21세기 포토맥 강가 마을에 얼굴 하나 새겨 흔적 남긴 것 아니겠냐고,
정두현 시집이 감동으로 다가와 울림을 주는 것은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과 결코 복원될 수 없는 상실감을 다스려 체험을 바탕으로 극한의 슬픔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 스스로 맨발로 걸어가면서/ 아이들은 두 개의 봉 앞뒤로 앉히고/ 가장 빛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가르쳐주시며/ 이승에서 몇 개의 사막을 건넜던가/ 이 세상에서 못다 산 두 사람의 천형을 / 천국으로 밀어가면서/ 노도 없이/ 사막을 저어가고 있다/ 아, 어머니‘ <어머니는 낙타가 되어> 부분 중 하나다.
얼마나 가슴 절절한 사모곡인가, 그 외에도 어린 나이에 묘지도 없이 죽어간 동생의 환생을 타국에서 보는 <부다페스트의 환생>, <빈 무덤>, <고향>, <지리산, 1958> 등이 좋은 시의 덕목을 보이고 있다. <얼굴>, <성형수술>, <구두짝이 날아갔다> 등의 시편들은 무절제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꼬집기도 해 시 읽기에 재미를 더한다.
주옥같은 정두현 시인님의 시편들로 이 세상 누군가가 위로받고 힘을 얻으리라 믿는다.
시인들은 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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