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상영중인 ‘로빈 후드’의 주인공의 역사는 중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서의 시에도 언급된 바 있는 로빈 후드는 12세기 영국의 노팅엄의 셔우드 숲에서 ‘메리 멘’이라 불리는 자기 부하들과 함께 부자들의 재물을 약탈한 멋있는 도적으로 묘사됐는데 물론 그는 구전돼온 전설 속의 허구의 인물이다.
범법자인 로빈 후드가 세월과 무관하게 전 세계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영화에서 로빈 후드로 나온 러셀 크로우가 기자회견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로빈 후드의 인기는 그가 부자에게서 약탈한 재물을 빈자에게 나눠 줌으로써 그들에게 물질적 혜택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라면서 “로빈은 남을 위해 자기를 헌신한 자로 그는 평민과 귀족 및 왕 간의 잘못된 관계의 균형을 시정하려고 애 쓴 사람”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로빈 후드는 의적이요 정의의 수행자인 셈인데 우리나라의 홍길동과 일지매의 얘기가 인기가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까닭에서다. 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권력과 부를 취득한 일부 특권층의 횡포와 비리와 오만은 로빈 후드 때나 지금이나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특히 은행과 투자회사들의 탐욕 때문에 초래된 경제 불황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본 많은 서민들의 한과 분노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요즘 어쩌면 사람들은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로빈 후드의 얘기는 요즘 시의에도 맞는다고 하겠다.
2억달러에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로빈 후드’는 개봉됐을 때 미 언론으로부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았는데 흥행 성적도 기대만 못하다(개봉 18일째인 지난 1일 현재 8,600만달러). 크로우는 기자회견서 흥행이 잘 되면 속편에도 나오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흥행성적으로 과연 속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로빈 후드’는 전설의 본 고장인 영국에서도 탐탁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런던의 데일리 메일은 “영화가 거칠고 잔혹하고 음울하며 즐거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면서 “할리웃이 또 한 번 영국 역사의 뺨을 후려친 허튼 소리”라고 달갑지 않은 뜻을 표명했다.
로빈 후드의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는 무성영화 때부터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첫 영화가 1909년에 제작된 ‘로빈 후드와 그의 메리 멘’이니 크로우의 영화까지 무려 100년 동안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인기 품목이다.
극장용 영화와 TV 영화로 수 없이 많이 만들어진 로빈 후드의 얘기 중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멋쟁이 에롤 플린이 나온 ‘로빈 후드의 모험’(1938·사진)이다. 칼싸움 영화(스와시버클러)에 많이 나온 플린은 여기서 성적 매력과 유머와 허세를 십분 발휘하며 세련된 무자비한 악인인 가이 경(바질 래스본)과 싸우고 애인 매리앤(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과 사랑을 나누어 대뜸 수퍼스타 자리에 올랐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멋진 배우들의 모습과 화려한 세트와 의상과 컬러 등 오락영화의 금자탑인데 특히 오스카상을 탄 에릭 본 콘골드의 교향곡과도 같은 웅장한 음악이 매우 훌륭하다. 지금까지 나온 로빈 후드 영화 중 최고로 꼽히고 있다.
플린보다 더 날렵한 동작을 구사한 더글러스 페어뱅스가 나온 무성영화 ‘로빈 후드’(1922)도 페어뱅스의 매력적인 미소와 카리스마 때문에 역시 명화로 평가 받고 있다.
또 다른 좋은 영화로는 당시 나이 46세였던 션 코너리가 주연한 ‘로빈과 매리앤’(1976)이 있다. 코너리는 20년간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귀국한 삶에 지친 로빈 후드로 나오는데 그의 애인 매리앤으로는 은퇴 후 이 영화에 나오기 위해 스크린에 돌아온 오드리 헵번이 나온다. 원숙한 둘의 콤비가 아름답다.
케빈 코스너도 로빈 후드로 나왔다. 그는 ‘로빈 후드: 도둑 왕자’(1991)에 주연했는데 너무나 현대적인 모습의 코스너가 로빈으로 어울리지 않았는데도 영화는 당시 그의 인기를 등에 업고 빅히트했다.
로빈 후드 영화 중 색다른 재미가 있는 것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나온 현대판 뮤지컬 코미디 ‘로빈과 세븐 후즈’(1964). 시나트라는 1930년대 시카고의 갱 두목 로보로 나와 총 쏘고 노래까지 부른다. 영화에는 시나트라의 일당을 일컫는 ‘랫 팩’의 멤버들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와 딘 마틴 외에도 빙 크로스비와 피터 포크 등도 나온다.
로빈 후드 얘기는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여우가 로빈으로 나오는 디즈니 작품 ‘로빈 후드’(1973)로 이것은 뮤지컬이다. 또 유명 단편 만화영화들의 주인공들인 토끼 벅스 버니가 나오는 ‘래빗 후드’와 오리 대피가 나오는 ‘로빈 후드 대피’ 등도 재미있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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