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내린 밖의 세상은 꽃으로 가득하다. 누가 꽃들의 출석을 따로 부른 것도 아닐 텐데 밥풀만한 조팝꽃에서부터 주먹만한 목련까지 꽃이란 꽃은 죄다 피었다.
채워가는 것을 행복으로 알던 날들이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에 그림이며 자잘한 소품들을 걸고, 채우며, 바라보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던 나이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비워내는 행복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단출해지는 살림들, 깨끗하게 닦아 놓은 마룻바닥의 적당히 비어 있는 공간이 좋다. 반닫이 위의 앤틱시계나 악기모형들을 거둬낸 자리에 흑백사진 몇 장을 올려 놓는다. 사진은 누렇게 변색되었거나 묵은 책갈피에서 떨어진 마른 꽃잎처럼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다. 성냥갑만한 작은 사진들, 촌스럽기 그지없는 흑백사진들을 들여다 보는 일이 즐겁다. 사진 속에는 오롯한 추억의 길이 뚫려 있다. 인생의 어느 한나절은 누구에게나 꽃을 피우는 시간이었음을 말해 주는 사진들, 그 오연한 삶의 흔적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공손해진다.
십몇 년 전에 시외할머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할머님은 오래된 와이셔츠상자에 고이 간직하셨던 남편의 어릴적 사진들을 내게 내놓으셨다. 품에 그득했던 자식들과 유리문을 열면 하얀 햇빛이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는, 처음 장만했던 양옥집의 사진을 내게 보여 주시며 흐뭇이 미소짓던 할머님, 어른들의 사진까지 여남은 장을 더 챙겨드는 나에게 “가져간다면 고맙지, 고마운 일이지,” 할머님은 혼잣소리를 거푸 하셨다. 세상에서의 시간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 문앞에 당도했음을 아셨던 때문이었을까. 떨어지는 꽃잎처럼 소멸될 할머님의 시간들, 그 흔적으로 남은 사진들을 어린 손주며느리가 가져가겠다 하니 그게 그리 고마우셨던가 보다. 그해 겨울 할머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한국에 간 적이 있었다. 한 달이 넘게 언어신경이 손상되어 혼곤한 잠과 눈빛으로 언어를 대신 하시던 어머니가 내놓으신 게 있었다. 그동안 보내드린 아이들의 사진이었다. 정리하시고 싶으시다 했다. 옷도 그릇도 두벌 이상씩 남겨 놓고 싶지 않으시다 했다. 창졸간에, 황망간에 당할지도 모르는 이별 앞에 모든 걸 간단히 해두고 싶으시다 했다. 어눌하기 이를데 없는 발음이었지만 어머니의 언어는 완강했다.
타국만리에 첫 자식을 보내 놓고 꽃밭 쪽 하늘 밑일까, 뒷곁 쪽 하늘 밑일까, 어머니는 딸을 향한 그리움의 적을 둘 수 없어 마당만 서성이셨다. 첫아이의 사진을 보내드린 날, 어머니는 눈도 못뜬 배냇저고리 아기사진을 가슴에 안고 잠이 드셨다 한다. 어머니가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며 품에 안고 잠이 드셨다는 아이의 첫 사진은 그렇게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사진밭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먼저 양쪽 조부모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마루 깊숙이 들어가 있는 햇빛의 각도로 보았을 때 초여름날의 하오쯤 되었을까, 풀기로 부푼 모시한복을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계신 나의 조부모님과 털보사진관이나 행복사진관 쯤에서 펑 터지는 마그네슘 분말 조명 밑에 찍은 시조부모님 사진의 표정이 약속한 듯 순전하시다.
수수밭을 배경삼은 예닐곱살의 내 사진, 마당가 꽃밭에는 여름꽃 몇 포기도 피어 있었을 텐데 칠팔월의 해그림자가 이미 오후의 꽃밭을 점령하고 있었던 시각인가 보다. 그 사진 옆, 양옥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너댓살의 상고머리 아이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남편이다.
그 두 아이는 같은 해 이월, 충청도 산골과 서울에서 각자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는다. 여자아이는 그날도 여전히 벗지 못한 빨간 털쉐타를 입고 졸업장을 돌돌 말아 쥔 채, 표정이 쑥스럽다. 체크무늬 반코트에 구두까지 갖춰 신은 서울아이는 개선장군처럼 커다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있다. 사철나무 가지와 물들인 미농지 종이꽃으로 만든 꽃다발이다.
남편은 사촌들과 함께 창경원 벚꽃놀이에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대한항공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비행기의 트랩에 오르면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야기의 대결구도에서 밀려나는 나의 사진들, 사진밭은 도시의 남자아이가 장악해 버리고 만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가고, 해운대 백사장에서 까만 선그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던 그 시간, 나는 싸릿재 너머 깊숙한 동네의 하늘을 쉐엑-하고 가로질러 뒷산 마루로 사라지는 비행기를 목이 빠져라 올려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당가의 원추리꽃 위에 어질어질, 샛노란 어지럼증을 내려 놓으며 비행기가 날아가는 까마득한 세상을 궁금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은 그 산마루로 사라지던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서울에 처음 가본 시골뜨기였던 나도, 그 시골뜨기 여자에 반해 결혼한 남자의 머리에도 세월의 흔적이 희끗하다. 파리똥 묻어 있던 사진틀에서 빼내오고, 감잎 같던 어르신의 손에서 넘겨받고, 오래된 앨범에 등짝이 붙어 있기도 했던 사진들 속에는 이제 뵐 수 없는 얼굴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방에는 열한 손주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어둡고 지루한 한밤이 지나고 햇귀가 비춰오는 시각을 기다리신다는 어머니, 미명 속에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며 그 아이들이 살아낼 하루의 안녕과 한 생의 온전함을 위해 긴 기도를 하신다는 어머니, 비록 반편의 몸은 굳어졌으나 굳지 않은 온전한 정신으로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신다 했다. 미완의 언어를 온전하게 들어주실 하나님이 계셔 행복하시다 했다.
어릴 때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해 미안하다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아실까. 어머니의 한 생이 내겐 전부 느린 컷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내 가슴 한복판에 걸려 있는 그 사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대로 된 사진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보듬어 안고 음력 이월의 시골길, 그 찬바람 속을 걸어 읍내 사진관에서 찍어온 내 첫돌사진 속의 어머니 얼굴은 아직도 복사꽃처럼 곱다. 그 고운 어머니의 얼굴 위로 봄볕이 가루분처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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