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반복해 오던 버릇대로 어느덧 50년의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 대학교 학창시절 그 청순한 꿈과 낭만이 흐르던 서울 문리대 구 동숭동 캠퍼스를 헤맨다.
가을에 남국(南國)으로 떠났던 제비가 돌아와 새 둥지를 틀면서 온 누리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던 1960년 4월 초순. 2학년 새 학기를 맞아 본격적인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캠퍼스에 때 아닌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마산에서 타전된 AP통신의 이 비보는 짤막했다.
“낚시꾼은 굉장히 큰 놈이 물린 거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낚싯줄을 당겼다. 그러나 얼마 후 물 위에 떠오른 물체를 보고 그만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이 굳어져 버렸다. 낚싯줄 끝에 매달려 올라온 물체는 다름 아닌 김주열의 시신(屍身)이었다.”
젊은 우리들의 가슴엔 일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바로 3주 전 3월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는 원천적 부정선거이었다. 선거당일 전국 각지에서는 자유당의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항의가 빗발치듯 일어났다. 마산의 민주시민들도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이 시위대열에서 실종된 마산상고 1년생 김주열의 참시(斬屍)가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 것이다. 이 짧은 낚시 보도는 민중들의 가슴속 깊이 침전한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울분의 화산을 폭발시켰다.
남해의 항구도시 마산에서 솟아오른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을 덮쳤다. 김주열 군의 희생이 점화한 한 점의 불씨는 요원(燎原)의 들불이 되어 소백산맥을 타고 북으로북으로 번져나갔다. 이 불길은 4월 15일에는 호남의 고도(古都) 전주를 휩쓸었고, 이틀 후에는 서울을 덮쳤다. 4월18일에는 고대가 일어섰다.
드디어 4.19 혁명의 아침이 밝아 왔다. 이날은 화창한 봄날의 해맑은 표정과는 달리 처연한 분위기가 동숭동 문리대 교정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등사판으로 민 선언문을 낭독했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바로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이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임을 자랑한다.”
국회의사당과 중앙청 및 경무대 입구까지 진출한 이날의 시위에는 서울대를 비롯, 고대, 연대 등 서울의 거의 모든 대학이 참가했고, 대광중고를 비롯하여 어린 중고생을 포함해 십만을 헤아리는 학생들이 참가했다. 오후에는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서울 일원은 혁명의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광주를 비롯,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민주주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이 민주시위를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군중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날 발포로 1백15명이 숨지고 1천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휴교령이 내렸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은 파쇼 전제주의, 민족 분단주의, 사대 매판주의 및 부정부패에 대한 조종(弔鐘)이자 민주주의, 민족자주 및 민족통일 의지의 승전고(勝戰鼓)였다. 세계가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결의에, 그리고 그 결의를 실천하는 용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기보다는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고 악담을 퍼붓던 영국의 언론이 먼저 경의를 표했다. “마치 이 나라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맞는 날과 같았다. 스스로 자유를 찾은 것이다”라고 런던타임스가 격찬했다.
하지만 이 혁명으로 피운 우리 민족의 꽃 봉선화는 이듬해 5월16일 미명에 한강을 도강한 군사쿠데타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혀 지고 말았다.
4.19혁명의 위대성은 우리 겨레가 스스로의 역량으로 민주주의의 새 지평(地平)을 열어젖힌 데 있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자주의 선언이었다면, 4.19는 바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선언이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타도한 4.19 혁명의 용기와 기백이 민족 모두의 생활을 선도하는 현재진행형의 의식혁명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4월 혁명의 봉화(烽火)는 영원히 꺼지지 않은 횃불로서 우리 민족이 통일을 성취하고 정의와 자주에 입각한 참다운 해방을 실현하는 그 날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 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Editor.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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