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해외문학상 수상소감-
할머니는 꽃을 싫어 하시는 줄 알았다. 감자밭에 별처럼 뜬 감자꽃도 모지락스럽게 잘라 밭고랑에 던지시고 길섶의 허리 긴 망초꽃 역시 할머니 눈에 띄는 날이면 뿌리째 뽑히며 비명횡사를 면치 못했다. 먹거리가 모자라던 시절, 가난한 밥상을 채우는 일로 한평생을 사신 할머니의 채마밭에 눈치 없이 핀 꽃들은 그악스런 할머니의 손끝에서 그렇게 생을 마름해야 했다. 그런 할머니가 저녁 설거지를 마친 자숫물도 휘이 뿌려 주시고, 초저녁 마루 끝에 앉아 다정스레 말을 거시기도 하는 꽃이 있었으니 마당가의 수국이었다. 해가 뉘엿이 지면 할머니의 마음도 저녁연기처럼 내려앉기 때문이었을까, 두레밥상에 그득하던 새끼들에게 맘껏 퍼주고 싶었던 고슬고슬 하얀 쌀밥, 꽃이 그 고봉밥사발을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꽃에게 말을 걸던 할머니가 지금도 생각난다.
낮설고 물설고 꽃도 나무도 설게 서있던 미국에서 수국꽃을 처음 만났던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꽃은 새로 이사해 간 타운의 어느 집 낮은 휀스 너머로 늘어져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다 마주친 수국나무는 햇빛에 하얀 꽃덩이를 내놓고 막 분홍색으로 꽃빛을 바꾸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분홍빛 수국에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여 꽃이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늦가을의 초입, 나는 그 꽃을 도둑질 하고야 말았다. 휀스 밖으로 당알당알 무겁게 넘어와 있는 꽃가지 하나를 뚝 분질러 들고 바삐 걸었다. 달밤이었다. 달빛 때문이었다. 내 어릴 적 살던 집의 모퉁이에 서 있던 오동나무, 그 커다란 잎사귀에서 미끄럼을 타던 달빛이 나를 쫓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꽃”이라 이름해 보는 것, “별”이라 불러 보는 것, “밥”이라 소리내 보는 것…. 우리말에 깃든 절묘한 기운, 나는 그 모국어와의 사랑에 빠져 타국에서의 긴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왔다. 개밥바라기처럼 외로운 시간도, 가슴 속이 물기 하나 없이 바삭거릴 때도, 혼돈이나 좌초되던 시간들도 모국어가 나를 다독였다. 도리질 치고 딴청 부리는 내 어린것들에게도 그 모국어의 젖줄을 물려주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왔다. 그리고 꽃과 별과 밥이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는 하나의 세계를 소유하게 될 때까지 나의 그 수고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모국어의 맛은 찰지다. 햅쌀에 자박자박 된 물을 잡아 솔가리 한줌을 던져 넣어 자쳐낸 쌀밥 같다. 내 모국어의 자궁은 호박꽃 같은 등불 아래 그 쌀밥을 호호 불어 먹던 동네였다. “눈 감아라, 눈 감아.”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버리면서도 벌레에게 말 걸던 사람들, 두둑에 심은 콩넝쿨에게도, 여물구새의 구순한 돼지에게도 말 걸던 정겨운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다.
나는 할머니의 무명치마에 묻어 밤마실 가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들한테선 쉰 밥 냄새가 났다. 비 젖은 짚북데기 냄새 같은 것도 났다. 그 할머니들 사이에서 곶감 하나나 굳은 떡조각 하나를 쥐고 까무룩이 잠이 들면 그 잠 속으로도 자분자분,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는 계속 되었다. 할머니의 등에 선잠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도 우렁우렁, 할머니의 혼잣소리는 계속 되었다. 할머니의 등으로 쏟아지던 하얀 달빛, 논둑을 무너트릴 듯이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 멀찌감치서도 눈치채고 일어서던 누렁이의 기척, 그 아늑했던 모든 것들이 내 모국어의 자궁 속에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달이 덜 차서 나온 아이처럼 그 자궁 속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햇귀가 미처 떠오르기도 전, 잠든 동네를 빠져나와 자작나무 숲을 돌아 내 삶의 터전인 세탁소로 간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어두운 창문을 내린 채 아직 남은 새벽잠을 뒤척이고 있다. 아침을 파는 코너 베이커리의 창문만이 환하다. 베이커리의 뒷문을 빠져나온 빵 굽는 냄새와 커피 냄새가 내 발뒤꿈치를 따라온다.
블랑카, 마리아, 카르맨, 가르시아, 후안, 그네들도 나도 이민자로서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줄줄이 다려 놓은 옷에서 풀풀 김이 난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멕시코, 생김새는 비슷한데 낳아준 모국은 각기 다르다. 저마다의 귀에는 이어폰이 끼어 있다. 무슨 노래일까, 무한 반복되는 신나는 리듬도 있고, 라 쿠카라차- 굶주림의 삶을 노래한 바퀴벌레의 노래도 있으며, 리오그란데 강을 몰래 넘으며 끊임없이 도망다녀야 했던 이민의 설움을 기억하는 노래도 흘러 나온다. 노래가 된 저들의 모국어, 저마다의 삶이 뜨겁듯이 저마다의 모국어도 뜨거운 것이 아니겠는가.
반평생을 살아도 서툰 영어는 가슴에 쳇기를 남긴다. 쳇기로 뭉근한 가슴을 안고 날 저문 길을 밟아 수국나무 두 그루 심어둔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의 그 자작나무 숲에 새둥지 같은 저녁해가 걸려 있다. 보푸라기같은 이파리들을 밀어내느라 저마다 소란스러운 숲, 지난 겨울 폭설에 넘어진 나무들이 희끗이 누워 있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나무들의 주검은 봄이 와도 일어서질 않는다. 넘어진 나무들은 썩어져 다시 숲이 되리라. 푸른 잎사귀로 다시 피어나리라.
숲길을 돌아나와 집으로 향하는 낮으막한 언덕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는다. 나무들 사이로 바알갛게 불 밝힌 집들이 보인다. 돌아올 사람들을 향해 켜둔 저녁 집의 불빛처럼 따뜻한 게 또 어디 있을까. 명치 끝에 걸려 있던 쳇기의 자리에 허기가 매달린다. 그 허기를 안고 달려가는 곳이 있다. 기세 좋은 불너울에 한소끔 밥눈물을 넘긴 가마솥, 죽어서도 향기를 토해 내는 나무들, 어두워도 불 켤 줄 모르고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 곁이다. 솔가지 하나에 도독 도도도독, 토독 토도도독, 밥 자쳐지는 소리가 정답다. 몽당 빗자루를 깔고 불땀을 다독이시는 어머니 곁에 바짝 앉아 본다. 두 뺨이 뜨거워 온다. 이제 내 곁에 없는 아홉 사발 밥그릇의 이름들을 그리워 해보며 얼굴 들어 바라보는 언덕 너머로 사윈 불땀같은 저녁해가 힘없이 넘어가고 있다.
윤동주시인께 죄송하다. 이국에 살며 모국어를 사랑한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윤동주시인의 이름을 단 상에 거론되었다니 참 죄송한 일이다. 어줍잖은 수상소감 하나에 잠을 뒤척이는 이 밤, 돌아갈 수 없는 모국과 모국어를 가슴에 품고 혼자 잠들었을 시인을 생각하니 소금 뿌린 듯 가슴이 저려온다. 모로 눕고, 다시 모로 누워 보았을 그 밤에 씌여진 아픈 싯귀들을 어찌 허투루 읽어볼 수 있을까.
쓰러진 나무가 다시 숲이 되는 봄, 나는 한 그루 나무를 꿈꿔 본다. 가지 끝에 푸른 모국어로 잎사귀 달아볼 날을 꿈꿔 본다. 행여 나무가 된 내가 숲에 서 있으면 달조각 주우러 오신다던 시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믐밤의 그 숲에 서 있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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