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표현의 자유다. 군사 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직원이 상주하던 서울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한 나는 그 치욕적인 날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난 1일 현대 이란 영화계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이란의 현 정권을 비판하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49·사진)이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선뜻 떠오른 생각이 박정희 정권 당시 우리나라의 표현과 언론에 대한 탄압이었다.
당시는 신문 기사에 은연중 반정부적 내용을 함축하기만 해도 신문사 간부가 중정이 있던 남산에 끌려갔었다. 집권자 마음대로 한국 가요와 미국 팝송의 가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금지시켰는데 이런 탄압은 소설과 시와 영화와 연극 등 모든 표현매체에 대해 가해졌었다.
지난 60년대 한국에서 소위 문예영화가 붐을 이룬 것도 당국이 영화인들에게 쓸데없이 사회 정치적 영화를 만들지 말고 말캉한 문예영화를 만들 것을 장려했고 영화인들도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수용 안 해 봤자 제작활동에 족쇄가 채워지게 마련이지만).
지난 1990년 초부터 2000년 초까지 이란 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을 때 감독들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든 것도 한국의 경우와 유사하다. 회교 근본주의가 군림하는 억압적인 사회 환경 안에서 진실을 추구하려고 애쓰는 감독들은 모두 우화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파나히가 이번에 체포된 이유는 당국은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만 그가 극보수주의자인 현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정적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의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일 테헤란의 자택에서 아내와 딸과 15명의 초청객들과 함께 체포됐는데 파나히와 두명의 동료영화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튿날 풀려났다.
소식통에 따르면 파나히는 지난 6월에 있은 총선에서 아마디네자드가 재선된 것은 부정선거에 의한 것이라며 당선 취소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과정을 영화로 만들려다가 체포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 9월에는 이 시위에 참가한 죄로 출국금지 조치를 당해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의 이란 영화 패널토론에 참석하지 못했다.
파나히는 근로자 계급 출신으로 17세 때 테러리스트로 전 샤 정권에 저항하다가 5년간의 옥살이를 했다. 그는 표현주의 수법으로 이란의 사회문제와 척박한 서민들의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
파나히는 지난 1995년 데뷔작으로 어린 소녀가 주인공인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데뷔작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탔고 2000년에는 ‘서클’로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진홍 황금’과 ‘오프사이드’ 등이 있는데 내용이 은근히 이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영화는 모두 국내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파나히는 이에 대해 “당국은 독립영화인이나 자기들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서양 스파이로 간주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서양 특히 미국을 증오하는 아마디네자드는 이미 몇 년 전에 세속적이요 여권 옹호적인 서양영화에 대해 불법조치를 취했다. 그는 또 국영 라디오와 TV에 대해서도 서양 음악을 틀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독재자들이 하는 짓이 참 비슷하다.
해외에 잘 알려진 이란 감독 치고 자기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금지 조치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이란은 경직된 사회다, 역시 이란 영화계 중흥의 기수 중 하나로 ‘침묵’과 ‘가베’ 등을 만든 모센 마흐말바프와 그의 딸로 ‘사과’와 ‘칠판’을 연출한 사미라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등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쿠르드계 이란인으로 ‘술 취한 말들의 시간’을 만든 바만 고바디도 귀국을 못하고 있다(그의 이란 지하 록뮤직 세계를 그린 ‘아무도 페르샤 고양이들에 관해 몰라’가 오는 4월23일 미국에서 개봉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 여인’을 만든 여권 옹호론자인 타미네 밀라니도 당국의 요주의 인물 중 하나다.
영화인 탄압으로 종종 뉴스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나라가 역시 독재국가인 중국이다. ‘제6세대’ 출신인 루예 감독(‘수 조우 강’)은 지난 2006년에 만든 천안문 사태를 배경으로 한 두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린 ‘하궁’ 때문에 현재 5년간 작품 활동이 금지된 상태다.
한편 기자가 속한 LA영화 비평가협회(LAFCA)는 파나히 체포에 대해 성명을 내고 ‘우리는 자파르 파나히와 그의 가족을 지지하며 아울러 이란의 가장 중요한 예술인중 한 사람에 대한 당국의 지속적인 학대에 경악을 표한다’면서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투사가 될 수 없었던 내가 미국에 온 이유 중 하나가 군사정권의 표현 자유에 대한 탄압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 언론이 좌우로 갈려 서로 막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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