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7일에 열리는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꽃인 작품상을 놓고 이혼한 부부가 서로 다투게 됐다. 둘 다 모두 9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아바타’(Avatar)의 감독 제임스 캐메론과 ‘허트 라커’(The Hurt Locker)의 감독 캐스린 비글로는 지난 1989~1991년 부부로 지내다 이혼했는데 둘은 지금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의 영화는 모두 전쟁영화라는 점만 빼고는 여러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동작포착 입체영화인 ‘아바타’는 영화제작 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대작으로 공전의 빅히트를 해 지금까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총 26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반면 ‘허트 라커’(육체적·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는 이라크전에 참전한 폭탄제거 군인들의 일상을 그린 소규모 인디영화다. 지금까지 흥행성적은 달랑 1,200만달러. 그래서 두 영화를 놓고 영화계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도 한다. 과연 성경대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것인가.
‘아바타’는 기술혁신과 메시지가 있는 내용 외에도 아카데미 회원들(5,777명)이 시상 조건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장대한 스타일과 흥행 대박이라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허트 라커’는 무명 배우(비록 주연인 제레미 레너가 주연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가 나오고 흥행도 저조한데다가 인기 없는 이라크전 얘기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시상 시즌의 성적을 보면 ‘아바타’는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사진 왼쪽)을 받았고 ‘허트 라커’는 제작자협회상을 받았다. 그리고 비글로는 얼마 전 미 감독노조(DGA) 62년 사상 최초로 여자로서 감독상(사진 오른쪽)을 받았다. 비글로가 DGA의 전철을 밟아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면 그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상을 받는 여자가 된다.
아카데미는 갈수록 하락하는 TV 시청률을 제고키 위해 이번에 지난 1943년 이래 처음으로 작품상 후보수를 과거 5개에서 10개로 배가했다. 그 결과 과거 같았으면 후보에 오를 수 없는 영화들이 덕을 봤다.
샌드라 불락이 나오는 감정적인 스포츠 가족 드라마 ‘블라인드 사이드’와 픽사의 만화영화 ‘업’ 그리고 소품 ‘교육’과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공상과학 액션물 ‘디스트릭 9’ 및 현대판 욥기인 코엔 형제의 소품 ‘심각한 남자’ 등이다. 이 중 ‘블라인드 사이드’와 ‘업’ 및 ‘디스트릭 9’ 등은 각기 총 흥행수입이 1억달러를 넘는 히트작들이다.
작품상 등 총 8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과 ‘아바타’까지 합치면 빅히트 한 영화들이 무려 5편이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들이 많이 포함돼 TV 시청률이 과거보다 크게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작품상 후보를 배가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비록 작품상 후보수를 10개로 늘렸지만 아카데미 회원들이 코미디는 무시한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행오버’(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수상)가 탈락된 것이 그 좋은 예다.
또 무겁고 심각한 영화와 대하 사극을 좋아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은 공상과학 영화도 2류 취급을 하고 있다. 이 점이 ‘아바타’가 작품상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카데미 사상 공상과학 영화가 작품상을 타기는 고사하고 후보에 오른 경우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힘들다.
지금은 불후의 명작으로 여겨지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우주 오디세이’ 경우 달랑 특수효과 부문 1개에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아카데미가 처음으로 공상과학 영화를 작품상 후보에 올린 것은 ‘스타워즈’(1977)다. 엄청난 히트작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는데 이 영화는 무려 10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작품상은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 탔다. 1982년에는 역시 빅 히트작인 ‘E.T.’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간디’가 가져갔다.
아카데미가 최근 들어 처음으로 환상적인 영화에 작품상을 준 것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유일한 경우다. 그런데 아카데미는 2008년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큰 호응을 받은 배트맨 영화 ‘암흑의 기사’를 다시 무시함으로써 공상과학이나 환상적 영화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고질이 재발했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이런 고질이 이들 장르영화를 보면서 큰 젊은 영화인들이 점점 더 많이 아카데미 회원이 되면서 서서히 치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흥진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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