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드루스는 우아한 영국 귀부인 같았다. 대학생 때 본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들은 청아한 음성이 다소 굵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 저 목소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 개봉된 아동영화 ‘이빨 요정’(Tooth Fairy)에서 요정의 여왕으로 나온 앤드루스를 지난 9일 샌타모니카 해변에 있는 카사 델 마 호텔서 만났다. 잿빛 섞인 금발을 단정히 다듬고 회색 재킷 속에 흰색 스카프를 한 앤드루스는 나이(74·사진) 탓인지 다소 체중이 늘어 보였지만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질문에 명랑하고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앤드루스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노래를 한두 곡쯤은 기억하고 또 부를 줄도 알 것이다. 나도 옛날에 영화를 본 뒤 ‘에델바이스’를 외워 부르곤 했는데 후에 중학교 영어선생을 할 때 공부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함께 불렀던 추억이 그립다.
앤드루스는 과거 성대수술을 잘 못 받아 옛날 같이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진 못 하지만 지금도 계속해 콘서트 무대에서 활약한다. 지난해에 할리웃 보울에서 공연한 콘서트 ‘음악의 선물’이 인기가 좋아 오는 5월에는 런던 무대에 올린다고 알려준 앤드루스는 “생으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일하는 기쁨은 특별난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에서는 런던 필과 공연하는데 앤드루스는 “공연장이 너무 커 신경이 쓰인다”면서 “소프라노 대신 베이스로 노래하고 내가 쓴 동화책을 해설하는 프로가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빨 요정’의 내용은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것인데 어머니기도 한 앤드루스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꿈을 갖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따분하게 될 것”이라고 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앤드루스는 어렸을 때 ‘미녀와 야수’와 ‘신데렐라’ 등 많은 고전동화를 사랑했지만 특히 9세 때 아버지가 사 준 ‘작은 잿빛 남자들’을 제일 좋아했다. “이 책이 커서 나로 하여금 동화를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앤드루스는 말했다. 앤드루스가 딸과 함께 쓴 동화 ‘줄리 앤드루스의 시, 노래 그리고 자장가 컬렉션’은 현재 9주째 뉴욕타임스 아동서적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앤드루스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생존자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을 공연하는 보드빌 쇼단에서 일하며 강훈련을 받았는데 이런 불의 단련과 가족애가 자기에게 감정적 힘을 부여한 원인이 돼 생존자가 된 것 같다고 회상하는 앤드루스는 “그런데 거기엔 좋은 운도 따라준 것 같다”면서 겸손해 했다.
그래서 앤드루스는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또 무언가를 시도하기를 좋아하며 어머니와 아내로서 가정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앤드루스는 “나는 일을 할 때도 90%는 집에 와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또 잉글리시 티타임도 함께 했다”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들려 줬다.
앤드루스는 반 오스트리아인이자 스위스인처럼 매년 두 곳을 찾아 머문다. 지난해 말에는 비엔나에서 비엔나 필과 함께 신년특집 TV 쇼에 나왔는데 이는 얼마 전 작고한 월터 크롱카이트를 대신해 나온 것이다. 비엔나 방문 후에는 스위스의 그스타드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로만 폴란스키의 별채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앤드루스는 폴란스키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앤드루스는 뮤지컬 외에 여러 드라마에도 나왔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폴 뉴만과 공연한 히치콕의 ‘찢어진 커튼’. 히치콕은 매우 우습고 친절하고 또 관대한 사람이었다고 앤드루스는 회상했다.
앤드루스는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유전자 탓인 것 같다면서 “운동은 아주 조금만 하는데 설탕 앨러지가 있어 단 디저트를 못 먹는 것이 큰 도움이 되나 보다”며 미소를 지었다. 웃는 모습이 목소리처럼 고왔다.
정신건강 유지의 비결로는 독서와 음악감상과 십자말풀이를 들면서 음악뿐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올해는 앤드루스와 영화감독인 남편 블레이크 에드워즈(88-‘티파니에서 아침을’ ‘핑크 팬서’시리즈)와의 결혼 40주년이 되는 해. 앤드루스는 부부생활 장수의 묘책은 서로 유머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남편은 정말로 달링”이라며 깔깔대고 웃었다.
앤드루스는 자리를 뜨기 전 “내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에게 다가가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하자 앤드루스도 “해피 뉴 이어”라고 응답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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