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이즈 어 메니 스플렌도더 싱/ 이츠 디 에이프릴 로즈/ 댓 온리 그로우즈 인 디 얼리 스프링/ 러브 이즈 네이처즈 웨이 오브 기빙/ 어 리즌 투 비 리빙/ 더 골든 크라운 댓 메이크스 어 맨 어 킹’. 오스카상을 받은 이 노래는 영화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1955)의 주제가다.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 냇 킹 코울 및 패티 김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특히 포 에이시즈의 노래가 감미롭고 감상적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는 홍콩 주재 미국 종군기자인 윌리엄 홀덴과 유레지언 의사 한수인(제니퍼 존스)의 로맨틱하고 애절한 사랑을 그린 총천연색이 눈부신 소프 오페라인데 청삼을 입은 존스가 몹시 고혹적이다. 영화에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도 나온다.
큰 눈과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동양적 고전미를 지녔던 존스가 지난 달 17일 LA 인근 해변마을 말리부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모정’은 홀덴이 한국전에 종군했다가 사망해 한국 팬들에게는 남 달리 애착이 가는 영화(홀덴은 영화 ‘도곡리의 철교’에서도 한국전에 미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한다)인데 지금도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 로맨틱한 장면이 많다.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은 두 연인이 키스하듯 서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사진)과 둘의 데이트 장소인 뒷동산에 홀로 선 나무 아래서의 러브신이 눈에 선하다. 나는 고교생 때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선남선녀의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에 황홀감과 쓰라림을 함께 겪었었다.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태어난 존스는 뉴욕에서 연극을 공부할 때(그의 첫 남편은 이 때 함께 공부한 배우로 후에 히치콕의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에 나온 로버트 워커) 오디션에 나갔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에 의해 발탁됐다. 셀즈닉은 존스를 마돈나처럼 흠모하고 사랑해 MGM 사장 루이 B. 메이어의 딸인 아내 아이린과 이혼하고 역시 워커와 이혼한 존스와 결혼했다.
셀즈닉은 존스를 위해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 첫 편이 존스를 대뜸 스타덤에 올려놓은 ‘버나뎃의 노래’(1943).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의 현신을 목격한 프랑스 시골 처녀의 실화로 존스는 이 역으로 오스카상을 탔다. 그러나 나는 영화가 너무 성서적으로 세척이 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빅터 영의 주제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존스가 기억상실증자로 나와 사랑의 편지로 인해 구제되는 ‘러브 레터스’(1945)가 좋다. 어찌 보면 서푼짜리 멜로물인데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존스가 ‘러브 레터스’에서 공연한 조셉 카튼이 역시 나온 ‘제니의 초상’(1948)도 내가 좋아하는 연애영화다. 뉴욕의 배고픈 화가와 다른 시간대로부터 나타난 여인과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얘기인데 저세상적 아름다움을 지녔다.
존스가 참한 여자의 모습을 집어던지고 불같은 성질의 표독스럽고(그러고 보니 존스는 살쾡이를 닮은 데가 있다) 예쁜 부엌데기로 나와 주인집의 사악한 망나니 둘째 아들 그레고리 펙과 뜨끈뜨끈한 열정을 불태운 ‘백주의 결투’(1946)도 셀즈닉의 영화다.
‘섹스 웨스턴’이라 불린 영화에서 존스는 구릿빛 피부의 젖무덤 사이골을 드러낸 채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대 남자들의 욕정에 불을 댕기는데 서로를 총으로 쏜 존스와 펙이 한낮 태양이 이글대는 산정에서 마지막 키스를 나눈 후 끌어안고 죽는 라스트 신은 거의 변태적이다. 영화가 당시로선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 가톨릭 교단의 저주를 받았다. ‘러브 레터스’ ‘백주의 결투’ 및 ‘모정’으로 존스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밖에도 존스의 잘 알려진 영화들로는 1940~50년대에 만든 ‘보바리 부인’ ‘캐리’ ‘플란넬 신사복의 남자’ 및 ‘무기여 잘 있거라’(셀즈닉의 마지막 작품인데 타작) 등이 있다.
존스의 배우로서의 생애는 셀즈닉이 사망한 1965년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 남편 사망 2년 뒤에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존스의 마지막 영화는 대재난 영화 ‘타워링’으로 도둑인 프레드 애스테어의 구애의 대상으로 나왔다.
존스의 삶을 역회전시킨 사람은 LA 인근 패사디나에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의 창설자인 노턴 사이먼. 둘은 사이먼이 64세 그리고 존스가 52세 때인 1971년 5월 한 리셉션에서 만나 그 달 말에 결혼했다. 그런데 사이먼은 존스를 만나기 몇년 전 ‘제니의 초상’에서 사용된 존스의 초상화를 매입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현재 뮤지엄의 새 내부와 정원은 남편 사후 노턴 사이먼재단 이사장이 된 존스에 의해 완성됐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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