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인사하고 웃고 떠드는 것을 보고 ‘가짜 행복’이라고도 하지만 이 시즌은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때이다. 신앙과 관계없이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 시즌에 좀 억지로 행복한 척한다 한들 크게 나무랄 바가 아니다.
지난 14일 세리토스 공연센터 무대에 선 앤디 윌리엄스가 청중에게 “여기 와서 기쁘다”고 인사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느낀 작은 행복감도 이 시즌에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 가수는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듣기 좋은 목소리는 윌리엄스의 음성일 것이다. 캐롤 앨범을 8개나 내 ‘미스터 크리스마스’라 불리는 윌리엄스의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약간 까칠까칠한 음성은 기쁨과 고적을 함께 품은 이 시즌에 참 잘 어울린다.
하얀 옷을 입은 10인조 밴드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 캐롤을 메들리로 연주한 뒤 무대에 나온 윌리엄스는 먼저 ‘이츠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어’를 부르며 시즌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연장은 올드팬으로 만당을 이뤘는데 한 여인이 “아이 러브 유 앤디”라고 소리치자 윌리엄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 러브 유 투”라고 답했다. 이 여인은 나중에 “올디스 벗 구디스”라면 옛 히트송들을 많이 불러달라고 졸라댔다.
검은 정장에 안경을 낀 윌리엄스는 지난 3일로 82세가 되었는데 한창 시절의 음성에는 다소 모자랐지만 특유의 이지 리스닝한 음성으로 캐롤과 자신의 히트송들을 열창했다. 나이는 어쩔 수 없어 늙어 보이고 수척했지만 그 나이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농담하면서 팬들과 정을 나누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윌리엄스는 나이에 관한 농담을 많이 했는데 농담 끝에 “나이가 몇 살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나 아직도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 나이 먹은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날 쇼는 버라이어티 쇼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이 크리스마스 쇼는 윌리엄스의 시즌 단골 쇼로 전국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레인 드랍스 폴링 온 마이 헤드’와 ‘사운드 오브 뮤직’도 좋았지만 이 날 지난 60년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청춘을 보낸 나를 추억에 잠기게 한 노래들은 ‘웨어 두 아이 비긴’(‘러브 스토리’ 주제가)과 경쾌한 ‘커내디언 선셋’ 그리고 ‘캔 겟 유스트 투 루징 유’. 특히 감미롭고 애절한 ‘웨어 두 아이 비긴’이 내 간장에서 비린내가 나게 했다. 노래들을 들으면서 지나간 것들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다.
윌리엄스는 ‘크리스마스 송’ ‘하크 더 헤랄드 에인절스 싱’ ‘두 유 히어 왓 아이 히어’ ‘빌리지 오브 세인트 버나뎃’ ‘아베 마리아’ 및 ‘환희의 송가’ 등 캐롤을 부를 때마다 짤막한 설명을 했는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전에는 예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마치 노래 가사처럼 얘기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장로교회 성가대원이었는데 이 날 공연을 보면서 그가 독실한 신자일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이 날 처음 안 것은 그가 골수분자 공화당원이라는 것. 그는 과거에도 오바마를 “막스주의자로 나라를 망칠 사람”이라고 비판했는데 이 날도 “오바마가 정책을 바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중들이 대부분 공화당 편인지 이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역설적이라 할 것은 윌리엄스는 바비 케네디의 절친한 친구로 케네디 장례식 때 ‘아베 마리아’와 ‘공화국 전송가’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윌리엄스는 지난 60년대 전성기를 보내면서 주옥같은 노래들을 잇달아 불렀다. ‘버터플라이’ ‘하와이언 웨딩 송’ ‘론리 스트릿’ ‘데이즈 오브 와인 앤드 로지즈’ ‘쉐도 오브 유어 스마일’ 및 ‘디어 하트’ 등 그의 히트곡들을 나는 당시 음악 감상실과 다방에서 들었다. 레이건 대통령도 윌리엄스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목소리를 ‘국보’라고 선언했을 정도다.
앤디 윌리엄스 하면 대뜸 떠오르는 노래는 오드리 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 ‘문 리버’다. 윌리엄스는 마지막 곡으로 “이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면서 이 곡을 불렀다.
‘문 리버 와이더 댄 어 마일/아임 크로싱 유 인 스타일 섬데이/오, 드림 메이커 유 하트 브레이커/웨어에버 유어 고잉 아임 고잉 유어 웨이.’ 헨리 맨시니의 곡과 자니 머서의 가사가 달과 구름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노래다. 윌리엄스가 로맨틱하고 은근히 유혹하는 듯한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자니 마치 나른한 꿈을 꾸는 듯한 쾌적감에 빠져든다.
윌리엄스는 “굿나잇 에브리바디.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브리바디.”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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