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할리웃의 시상시즌이다. 전미 영화평론위는 이미 올해 각 부문 베스트를 발표했는데 조지 클루니가 나온 ‘공중에 높이 떠’(Up in the Air)가 각기 최우수 남우주연(‘인빅투스’의 모간 프리만과 공동 수상)과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내가 속한 골든글로브 시상 주관단체인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11일이 각 부문 베스트 후보 투표 마감일이어서 나도 이미 투표를 마쳤다. 발표는 오는 15일에 한다.
시상시즌이 무르익으면 할리웃에서는 매일 같이 영화사들이 마련하는 파티가 열린다. 투표 마감 전에 우리 회원들을 초청해 수상 후보에 오를 만한 작품의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들과 섞어 놓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홍보하는 잔치다. 한 마디로 ‘잘 좀 봐 달라’는 것인데 자유당 때도 아니고 접대 받았다고 해서 표를 찍어줄 수는 없지만 여하튼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기분이 괜찮다.
지난 1일 쿠엔틴 타란티노가 감독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제작자 로렌스 벤더의 벨에어 자택서 열린 파티는 할리웃의 올드 스타와 뉴 스타들이 대거 참석한 별들의 잔치였다.
손에 스카치 잔을 들고 인파로 바글바글 대는 집 안팎을 헤집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엘리옷 굴드(매쉬), 샤론 스톤, 리들리 스캇 감독(딸벌인 미녀와 동행), 원로 코미디언 단 리클스, 두 감독 론 하워드와 저드 애파토 및 TV쇼 진행자 제리 스프링어 등. 그런데 스프링어는 동반한 새파랗게 젊은 여자의 허옇게 드러난 허벅지에서 손을 뗄 줄을 몰랐다.
속사포처럼 말을 하는 타란티노에게 다가가 영화 치하를 한 뒤 그와 오랜 친구인 마가렛 조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연락이 뜸하다 1년 전부터 다시 대화하고 있다”면서 “영화 홍보차 한국에 가려다 막판에 취소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의 영화에 나온 독일과 프랑스 배우들인 크리스토프 월츠, 다이앤 크루거 및 멜라니 로랑과도 반갑게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다. 막상 주연인 브래드 핏은 이 날 안 왔는데 핏은 다소 나르시스트다.
나는 이 날 참으로 보기 드문 할리웃의 세 사람을 만났다. 파티장을 어슬렁대다 보니 저쪽 테이블에 TV 시리즈 ‘가시나무 새’와 ‘쇼군’으로 유명한 리처드 체임벌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대뜸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그의 올드 팬임을 알려줬다. 체임벌린은 자기를 기억해줘 고맙다면서 “최근 살던 하와이로부터 LA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그와 작별의 악수를 하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인이 다름 아닌 재클린 비셋이 아닌가. 나는 옛날에 우아함과 선정성을 함께 지녔던 비셋(‘더 디프’, ‘불릿’)을 흠모했었다. 그래서 그에게 바짝 다가가 악수를 나눈 뒤 “나 오래 전부터 당신을 좋아했다”고 고백했더니 “유 아 스위트”라면서 자기 옆에 앉아 함께 얘기를 하자고 초대한다.
내가 서울 한국일보의 외신기자 시절에 일본영화 잡지에 실린 비셋의 사진을 뜯어내 벽에 붙여 놓고 동경했었다는 얘기를 털어놓으니 비셋은 “고맙다”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 비셋은 영화 ‘인천’ 촬영차 서울과 부산엘 간 기억을 회상하면서 “두 도시의 추억은 못 잊겠지만 영화는 수치스런 졸작”이라며 부끄러운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갔지만 아직도 아름다웠다. 나와 동갑인 비셋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이 아쉽기만 했다.
비셋의 손에 키스를 하고 곧바로 ‘디어 헌터’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마이클 치미노와 자리를 함께 했다. 사실 난 처음에 그가 치미노인 줄 몰랐다. HFPA 담당 홍보회사 사장 나디아가 소개를 해서야 알았다. 내가 치미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가 지금 여자가 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인데 마주 앉아보니 얼굴 모습과 몸과 제스처가 거의 여자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UA를 파산시킨 그의 영화 ‘천국의 문’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 치미노는 “나는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폭로하는 영화인들을 파멸시키는 음모의 피해자”라면서 “나야말로 D.W. 그리피스와 오손 웰스에 이은 제3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치미노를 떠나 반갑게 재회한 배우가 고약한 코미디 ‘보라트’와 ‘브루노’에 나온 사샤 배론 코헨. 그는 지난 여름 ‘브루노’ 기자회견 때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몸으로 내게 랩댄싱을 서비스 한 바 있어 우리는 그 때 일을 얘기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코헨의 옆에서 그의 귀여운 배우 아내 이슬라 피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함께 박장대소했다. 자정이 다 돼서야 파티장을 떠났다.
3일에는 베벌리힐스의 식당 ‘일 치엘로’에서 있은 ‘공중에 높이 떠’를 위한 파티에 참석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지 클루니는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안 내는 서민적인 호인이다. 기념촬영에 선선히 응하고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사람을 자기에게로 잡아끄는 흡인력을 가졌다. 나는 그의 최우수 남우선정을 축하한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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