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왕자 햄릿은 말 많고 우유부단한 크라이 베이비인가 아니면 내적 힘을 지닌 용감한 사람인가. 셰익스피어의 글을 통해 400년 전 탄생한 덴마크의 아름다운 왕자 햄릿이 오랜 세월 후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그가 어느 심리학자도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심리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햄릿은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철학적이며 믿음이 강한 사람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큰 결함을 지닌 살인자인데 이런 양면성이야 말로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인간성의 구현이라고 하겠다.
내가 햄릿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때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영화 ‘햄릿’(Hamlet·1948)을 통해서였다. 염색한 금발에 로마의 두상 조각을 닮은 올리비에가 “투 비 오어 낫 투 비”를 독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연기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올리비에는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오스카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사색의 왕자 햄릿은 그 성격이 너무나 복잡해 햄릿 역을 맡는 배우들의 그에 대한 해석도 구구각색이고 독자들의 해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연극 ‘햄릿’은 성격 탐구 드라마인데 그를 떠나 이 작품은 철두철미한 복수혈전 얘기라는데 재미가 있다. 끝에 가서 약간 맹물 같은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를 빼고 햄릿을 비롯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비명횡사를 하는 것을 보면 한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근친상간, 간통, 음모와 배신, 유령, 극중 극 그리고 우정과 로맨스 등 드라마의 온갖 요소를 갖춘 ‘햄릿’은 남자 배우들의 궁극적 역이어서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햄릿 노릇을 했다. 올리비에 외에도 존 길거드, 리처드 버튼, 니콜 윌리엄슨 및 케네스 브라나 등이 그들이고 멜 깁슨과 이산 호크(현대판) 등도 햄릿으로 나왔다. 한국 배우로는 고 김동원이 대표적인 햄릿이었다.
햄릿을 행동이 결여된 우유부단한 비겁자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우유부단을 도덕적 딜레마를 이해하고 될 수 있으면 부당한 행동을 안 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측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햄릿’을 보면서 그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삼촌 클로디어스가 참회의 기도를 할 때 등 뒤로 다가가 칼을 뽑아들었다가 ‘속죄의 기도를 할 때 죽이면 천국에 간다’면서 물러서는 장면을 보면서 햄릿에 다소 실망했었다. 나 자신 행동파가 못 되면서도 광인 노릇까지 해가며 호시탐탐 복수의 기회만 노리던 햄릿의 후퇴가 마음에 안 들었었다. 그런 햄릿을 사랑하다가 돌아버려 익사한 오필리아(진 시몬스)가 불쌍하기만 했다.
근래에 와서는 햄릿을 외디퍼스적 질투에 시달리는 마마보이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지만 며칠 전 만난 브로드웨이의 햄릿 주드 로는 그런 흔적은 셰익스피어의 글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뉴욕에서 있은 ‘셜록 홈즈’ 프레스 정킷에 참석했다가 홈즈의 친구 닥터 왓슨으로 나오는 주드 로가 주연하는 ‘햄릿’을 보러 21일 브로드웨이의 브로드허스트 극장(12월6일까지 공연)엘 갔다.
맨발에 허름한 셔츠 차림을 하고 허리에 단도를 찬 로가 지적이요 폭발적인 연기를 했다. 다소 정열이 넘쳐 코믹한 연기를 할 때는 어릿광대 같기도 했지만 심장을 쥐어트는 강렬한 연기였다. 반면 흑인 오필리아와 호레이쇼 및 햄릿이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고 부른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약해 로의 독무대이다시피 했다. 나는 이 날 연기를 보면서 햄릿이 사색과 우울의 왕자일 뿐 아니라 명배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로는 공연 이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쉰 목소리로 “햄릿은 ‘우리는 왜 여기 있으며 또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우리가 늘 묻지만 답을 할 수 없는 물음을 하는데 이런 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라면서 “그는 미친 세상의 유일한 정상인이면서도 주위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취급 받고 있다”고 말했다.
로는 이 역을 지난 6월 런던서 시작해 뉴욕으로 옮겼는데 공연 종료를 얼마 안 남긴 지금은 거의 무연료로 달리다시피 하고 있다고. 그는 이어 “이 역은 나의 모든 것을 투여한 것으로 지극히 만족한다”면서 “끝나면 좀 가벼운 역을 맡고 싶다”며 웃었다. 나는 로와 사진을 찍을 때 “나이스 투 시 유 마이 스위트 프린스”라고 인사를 했더니 그는 “내 공연을 보러 와 주어 정말 고맙다”고 답례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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