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의 본뜻은 로마시대 경기를 하던 원형경기장이다. 그래서 지금도 서커스는 천막 안에 설치한 큰 고리모양의 원 안에서 쇼를 한다. 미국의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 & 베일리 같은 초대형 서커스는 3개의 링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쇼를 하는데 이런 것을 스리-링 서커스라고 한다. 링링 브라더스는 ‘지상 최대의 쇼’라는 모토를 내걸고 지금도 미국을 순회공연하고 있다.
‘지상 최대의 쇼’(1952)는 세실 B. 드밀이 감독해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찰턴 헤스턴, 코넬 와일드, 베티 허튼, 도로시 라무어, 글로리아 그래엄 및 제임스 스튜어트(영화 내내 얼굴에 광대 분장을 하고 나온다)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나오는 화려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다(오스카 작품상을 받기에는 수준 미달이지만).
한국 최초의 서커스로 84년의 전통을 지닌 ‘동춘 서커스’가 경영난으로 오는 15일 공연을 끝으로 해체된다는 뉴스를 읽자니 내가 어렸을 때 곡마단 구경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텐트 안에 깐 거적 위에 앉아 접시돌리기, 외발 자전거타기, 줄타기, 마술 그리고 광대의 익살을 보면서 황홀무아 지경에 빠졌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스릴 있고 멋있는 것은 공중 그네타기 묘기다. 나는 곡예사들이 공중을 새처럼 훨훨 날며 이 그네에서 저 그네로 비상하는 것을 보면서 찬탄을 했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살빛 싸구려 스타킹을 신은 여곡예사의 종아리였다. 모든 것이 초라한 곡마단의 공기와 표정 없는 여곡예사의 염가 분 냄새가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나의 가슴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유랑인들의 집단인 한국 곡마단의 생태를 연민과 애정의 마음으로 묘사한 소설이 한수산의 ‘부초’다. 제목처럼 떠다니는 풀과도 같은 ‘일월 곡예단’ 단원들의 간난한 삶과 동지애와 사랑이 소박하고 솔직하며 또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한수산은 산업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의 삶을 동병상련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데 작품에 애조가 드리워져 읽는 사람의 가슴을 습기로 적셔 준다. 여기서 주인공 하명은 줄타기 곡예사인 지혜를 사랑하는데 곡마단에서는 이성간의 사랑이 금기로 돼 있어 둘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다.
옛날 한국 곡마단에 관해서는 마치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의 내용과도 같은 무섭고 섬뜩한 얘기가 나돌았었다. 서커스의 어른들이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밥 짓고 빨래하고 물 길어 나르게 하면서 학대하고 곡예를 가르칠 때는 무자비하게 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이런 소문 때문에 어린 내게 곡마단은 비극의 공연장이자 유형자들의 유배지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알록달록한 옷들을 입은 단원들의 온갖 묘기가 내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동화 세계에서의 어지럽게 돌아가는 만화경 정경처럼 느껴져 나는 마치 금단의 과일을 탐내는 아이처럼 그들을 부러워했었다.
곡마단의 최고의 꽃은 그네 타는 여곡예사다. 이 여곡예사 중 내가 연모하는 여자가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흑백 도시 풍경화와도 같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1998)에 나오는 마리옹(솔베이지 동마르탱)이다.
마리옹은 3류 ‘서커스 알레칸’의 그네 타는 여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다미엘(브루노 간츠)은 마리옹이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반해 그녀와 같이 있기 위해 불사의 천사 노릇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등에 닭털 날개를 단 곱슬머리 긴 금발에 날씬한 허리 그리고 커브진 몸매를 한 마리옹이 살빛 스타킹을 신은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내뻗고 그네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다미엘의 눈동자에 경탄과 동경의 물기가 샘물처럼 가득히 고인다.
트라피즈 아티스트라 불리는 그네 타는 곡예사 마리옹이 천사와도 같다면 영화 ‘트라피즈’(1956)에서 역시 그네 타는 여자로 나오는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육체의 악마라고 하겠다. 이탈리안 육체파로 속이 느글느글해질 정도로 육감적인 지나를 사이에 놓고 두 남자 공중 곡예사로 나오는 버트 랭카스터와 토니 커티스가 치열한 삼각관계를 이루는데 셋이 모두 탄탄한 육체가 노출된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어 그 열기가 가히 치정적이다.
1960, 7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면서 영화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 배삼룡 및 이주일 등도 거쳐 간 ‘동춘 서커스’의 퇴장은 오락거리가 컴퓨터화 하는 시대변화의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 ‘동춘 서커스’가 서커스 예술과 거리 여흥을 접목시킨 ‘시르크 뒤 솔레유’(현재 샌타모니카 피어서 공연 중)와 같은 변신을 하기에는 모든 여건이 부족했을 것이다.
‘동춘 서커스’의 해체가 마치 서글픈 속성을 지닌 옛 곡마단의 생태를 드라마로 보여주는 것 같아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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