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길’과 ‘카비리아의 밤’을 만든 이탈리아의 명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9순 나이에도 영화 제작에 대한 열정을 여전히 불사르고 있다.
지난 8월 8일로 90세가 된 디노는 자기가 만든 영화 ‘애정의 쌀’(1948)에서 탐스러운 허연 넙적다리를 드러낸채 논에 모를 심는 시골 여인으로 나온 실바노 만가노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 디노는 이 영화로 자신은 물론이요 만가노를 대뜸 이탈리아의 섹스 심볼이자 국제적 스타로 올려 놓았는데 만가노는 역시 남편이 만든 ‘맘보’에서 실팍한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 대며 춤을 춰 뭇 남자들의 목구멍을 달아 오르게 했었다.
살아 있는 영화사인 디노는 진실로 영화를 사랑하는 제작자다. 그는 지금도 유니버설사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면서 영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는 제작자가 하는 일을 ‘꿈의 창조’라고 말한다. 그의 꿈의 창조는 그의 생애에 많은 명작과 졸작을 내놓게 된다.
디노는 전후 에로티시즘과 네오리얼리즘을 혼성한 ‘애정의 쌀’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 제작자로서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펠리니와 헤어진 뒤 60년대 초 로마 근처에 초대형 스튜디오 디노치타를 세우고 앤소니 퀸이 주연한 ‘바라바스’와 존 휴스턴이 감독한 ‘성경‘ 등 여러 편의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대하 서사물들을 만들었으나 흥행서 실패하면서 7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나는 지난 1986년 아카데미 본부 내 새뮤얼 골드윈 극장에서 열린 디노의 제작사 DEG가 만든 아놀드 슈와제네거 주연의 졸작 ‘부당한 처사’(Raw Deal)의 시사회 때 디노를 잠깐 목격한 바 있다. 그는 극장 맨 뒤에 서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 그의 그런 성의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디노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윌밍턴에 스튜디오까지 차리고 초기 슈와제네거의 히트작인 ‘야만인 코난’ 등 일련의 히트작들을 냈으나 80년대 중반 떼돈을 들인 ‘타이-팬’과 ‘듄’ 등이 흥행서 참패를 하면서 1988년 DEG 회장 자리서 쫓겨났고 회사도 파산했다.
디노는 후에 인디영화 제작의 근간이 된 영화를 사전에 매매해 제작비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안해낸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는 돈이 없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영화는 우선 각본가가 최우선이고 다음이 감독이며 돈은 맨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디노는 각본가와 감독의 창의력과 권위를 인정하는 만큼 제작자로서의 자기 권위도 절대적으로 존중해 주기를 요구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가 ‘성경’ 제작을 위해 뉴욕에서 컬럼비아사 간부들과 협상을 할 때 제작자의 권위와 중요성을 무시한 영화사의 물주들 앞에서 자기 엉덩이를 까 보인 뒤 계약서를 찢고 이탈리아로 돌아 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디노의 역대 영화들을 보면 질과 규모 면에서 천차 만별의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최고 졸작 중의 하나인 ‘타이-팬’이 돈과 규모 면에서 대형적인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알 파치노가 주연한 뛰어난 소품 형사물 ‘서피코’ 같은 영화도 많이 만들었다.
디노와 함께 일한 감독들로는 영화사전에 뚜렷이 기록될 사람들이 많다. 데이빗 린치(블루 벨벳) 켄 아나킨(벌지 전투) 시드니 폴랙(콘도르의 3일) 로버트 알트만(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및 밀로시 포만(랙타임) 등이 대표적인 감독들. 그는 이 밖에도 킹 비도, 잉그마르 베리만, 리들리 스캇, 샘 레이미, 윌리엄 프리드킨, 마이클 치미노 및 존 밀리어스 같은 다양한 감독들을 기용,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50년대와 6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할 때 함께 일한 감독들로는 거장들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루키노 비스콘티 그리고 비토리오 데시카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및 알베르토 라투아다 등이 있다.
그가 각본과 연출자와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제작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명작만큼이나 많은 졸작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오르카’ ‘만딩고’ ‘립스틱’ ‘플래시 고든’ 및 ‘하얀 버팔로’ 등이 그런 것들. 이에 대해 디노는 영화제작이란 부침이 너무도 심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디노는 지금 자신이 제인 폰다를 기용해 만든 공상과학 환상 섹스모험영화 ‘바바렐라’(1968)의 신판 제작을 준비 중이다. 주연으로 신인을 기용할 예정이고 감독은 로버트 루케틱(어글리 트루스)이 맡는다. 디노의 건투를 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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