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들을 때면 지휘를 마친 베토벤이 청중의 열광적인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자 독창자중 한사람인 알토 카롤린 엉거가 그를 청중을 향해 돌려 세워 놓았다는 일화가 생각나곤 한다. 가슴이 아프다.
지난 3일 추석 달 아래 할리웃보울에서 이 곡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이날 연주는 LA필의 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28)의 공식 취임을 기념해 ‘환영 구스타보!’(Bienvenido Gustavo!)라는 제하에 마련된 것이었다. 뜻 밖에도 두다멜의 지휘는 매우 신중했는데 그는 베토벤과는 달리 곡이 끝나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청중을 향해 스스로 돌아서 소년 같은 미소로서 답례했다.
베토벤이 죽기 3년 전 완성한 인간적이자 또 초인적인 ‘합창’은 현재 상영 중인 베토벤 전기영화 ‘베토벤을 찾아서’(In Search of Beethoven-15일까지 뮤직홀서 상영. DVD 출시)의 말미를 장식한다. 이 영화는 지난 2005년 ‘모차르트를 찾 아서’를 만든 영국의 필 그랩스키가 연출했다.
유명 음악인들과 음악학자 및 역사학자들과의 인터뷰와 베토벤의 음악과 서한 등을 통해 ‘음악의 신’이요 모순의 인간이었던 베토벤의 개인적 삶과 음악 그리고 그의 예술혼을 다뤘다. 평생을 고통과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음악에 대한 정열과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베토벤의 삶을 본에서의 유년시절부터 비엔나(현지 촬영)에서 57세로 사망할 때까지 포괄적으로 취급한 유익하고 재미있고 또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작품이다.
지휘자 로저 노링턴과 리카르도 샤이이,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와 엘렌 그리모 그리고 바이얼리니스트 바딤 레핀 등 저명 음악인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의 음악적 자질과 특성 그리고 각 곡에 관련된 내용과 에피소드를 설명한다.
베토벤은 무례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또 직선적인 사람이었는데 반면 유머와 정이 많기도 했다. 말하자면 변덕쟁이였다. 또 그는 최고의 술꾼 작곡가라 불러도 될 만큼 매일 저녁 음식과 함께 포도주를 즐겼는데 포도주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동시대인으로 선배들인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존경하면서도 자기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누구에게도 지려고 하지 않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연애쟁이라는 사실. 그런데 베토벤은 늘 자기 신분을 초월한 귀족 여인들만 사랑해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베토벤의 개인교습 제자들이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여자가 18세난 줄리에타 귀치아르디로 베토벤은 이 틴에이저에게 ‘월광’ 소나타를 바쳤다.
베토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피아노 소나타를 증정하기를 즐겨했다. 그리고 매번 사랑할 때마다 ‘난 당신 없으면 못 산다’는 식이었다. 베토벤이 연애편지에서 ‘나의 불멸의 님’이라고 말한 여자는 아이들이 있는 남의 부인 안토니 브렌타노로 이 여자 하나만이 베토벤의 사랑에 응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브렌타노에게 보낸 연서에서 “나의 천사여 지금까지 그 어느 여자도 내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은 여자는 없었다”면서 “왜 내 사랑에 더 이상 응답이 없느냐”고 죽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악성 베토벤도 여자 앞에선 별 수 없구나.
베토벤은 실험정신이 강했는데 음악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건반악기 연주자로서 피아노의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그는 아파트에서 작곡을 할 때 마룻바닥을 치면서 음을 다뤘고 여름에는 더위를 식힌다고 몸에다 물을 부어가면서 작곡을 했는데 이 때문에 아래층 입주자와 툭하면 다퉜다고 한다. 그리고 귀가 완전히 먹은 말년에는 상거지 꼴을 하고 다녀 경찰에 뜨내기 거지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베토벤은 귓병에 시달리면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자기 속의 음악을 모두 소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가 32세 때인 1802년 10월6일 휴양 중이던 비엔나 북서쪽의 광천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서에는 베토벤의 고뇌와 이를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난 2006년 5월 베토벤을 찾아서 비엔나를 방문, 그의 무덤과 그가 묵었던 하일리겐슈타트의 백색 이층집을 찾아갔었다. 그 때 비를 맞으면서 베토벤이 거닐었을 보리수 길을 따라 걸으며 잠시나마 베토벤의 고뇌와 고독을 생각했었다.
‘훌륭한 작곡가는 완전한 정상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는 영화의 해설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모든 예술가는 고통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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