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은 미국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대재난 영화를 만들어왔다. 스크린 위의 재난은 사람들이 현실을 도피해 자신의 좌절감을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뿐 아니라 사람들은 남에게 가해진 재난과 불행을 봄으로써 각자의 불안과 공포와도 화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경제공황 시기에 미국 시민들은 끼니를 굶다시피 하면서도 ‘폼페이 최후의 날’과 클라크 게이블이 나온 ‘샌프란시스코’ 및 존 포드 감독의 ‘허리케인’ 등과 같은 각종 재난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시름을 달랬었다. 이 세 영화는 30년대 영화지만 특수효과가 볼만하고 또 재미와 내용도 모두 좋다.
1950년대는 전 세계가 미·소 간 핵전쟁의 가능성 때문에 공포에 떨던 때. 할리웃은 당시의 사회적 감정을 반영하는 공상과학 재난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작은 H.G. 웰즈의 소설이 원작으로 화성인의 LA 공격을 박진하게 그린 ‘세계들의 전쟁’과 거대한 돌연변이 개미가 역시 LA를 공격하는 ‘뎀!’.
이 때 영화로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구종말 영화는 내가 고교생 때 명동극장에서 본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과 에이바 가드너가 나온 ‘그 날이 오면’(On the Beach)이다. 3차 대전 후 서서히 이동하는 핵진을 맞는 사람들의 얘기로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라스트 신을 보면서 느꼈던 아찔한 충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50년대 원폭의 최초 피해국인 일본에서 공상과학 재난영화가 많이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핵실험으로 해저에서 깨어난 거대한 괴수가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고질라’ 시리즈가 그 대표작으로 고질라가 도쿄를 박살내는 것은 원폭에 의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초토화한 것의 재연이다.
미국에서 대형 재난영화가 많이 나온 또 다른 시기는 1970년대. 당시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로 시민들은 전쟁의 기운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정치 불신 그리고 경제적 불만 등으로 좌절감과 분노에 젖어 있었을 때였다. 그 때 사람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포사이돈 어드벤처’와 ‘타워링’ 및 ‘지진’ 등과 같은 재난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9년 전 새 천년이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지구종말 영화가 많이 나온 것도 세기 말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대변하고 있다. 이 때 나온 이런 영화들로는 ‘인디펜던스데이’와 ‘아마게돈’ 및 ‘디프 임팩트’ 등이 있다. 이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재난영화들은 대부분 인물의 성격 묘사나 플롯보다는 특수효과를 이용한 사람과 자연의 파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최근 들어 할리웃이 재난영화를 잇달아 만들고 있는 것은 할리웃다운 순리적 사이클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미국은 지금 테러의 공포와 경제 불황 및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두 개의 전쟁 때문에 악성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경제 불황과 자연환경 파괴에 의한 후유증 그리고 삽시에 온 지구로 퍼지는 질병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올 하반기와 내년 초에 이르기까지 나올 재난영화 중 지금 액션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오는 11월에 개봉될 재난영화의 전문가 롤랜드 에머릭의 ‘2012’. 마야문명의 달력이 예고한대로 2012년 12월21일 육지가 함몰되면서 지구가 수장되는 초대형 재난영화다.
오는 9월9일에 개봉되는 만화영화 ‘9’는 인간이 사라진 황량한 지구에 남은 사람 닮은 인형들과 사악한 기계들 간의 대결을 그린 것. 영화의 감독 셰인 애커는 영화의 아이디어를 이라크전쟁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에는 잿더미화한 세상에 살아남은 두 부자의 로드무비인 ‘길’ 그리고 내년 1월에는 덴젤 워싱턴이 전쟁으로 초토화한 지구의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의 보호자로 나오는 ‘일라이의 책’이 개봉된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를 하면서 LA(M파크4)에서도 상영 중인 ‘해운대’도 재난영화다. 신파 코미디 특수효과 영화로 초대형 쓰나미가 여름 해운대를 수장시키는 내용인데 오락영화로 큰 손색은 없지만 얘기가 장황하다.
성경에는 지구종말을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라고 예언하고 있다. 폭탄을 사랑하는 인간은 불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