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파도소리는 한국의 동해안이나 멕시코의 칸쿤 해변이나 마찬가지였다. 속절없는 하소연 같은데 명월이 만건곤한 칸쿤 해변에서 밤 파도소리를 듣자니 육군 졸병으로 동해안 보초를 서던 때가 오히려 그리워졌다.
소니사가 올 하반기에 개봉할 영화들을 소개하는 ‘소니의 여름’ 행사를 칸쿤에서 열어 지난 주 5일간 멕시코엘 다녀왔다. 우기의 칸쿤은 습기와 더위가 반죽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런 후덥지근한 열기를 의기양양한 태양과 푸르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바다가 빨아 말리고 있었다.
칸쿤은 순전히 바캉스 타운으로 긴 해변을 따라 리츠 칼튼, 힐튼 및 쉐라튼 등 최고급 호텔들이 늘어섰는데 급조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해변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호텔들이 자연과 인공의 얄궂은 대조를 이뤄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서 350여명의 기자와 영화사 직원들이 참가했는데 소니가 큰 돈 들여 영화 홍보겸 참가자들에게 여름휴가를 제공한 일종의 선심 서비스였다. 도착한 다음 날인 4일 밤 이번 행사에서 소개된 우디 해럴슨 주연의 액션 코미디 ‘좀비랜드’ 비치파티가 열렸다.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나온 송장들처럼 얼굴에 피 칠을 한 좀비들 사이를 어슬렁대다가 덴마크에서 온 한국계 여기자 앤 린드 앤더슨을 만났다. 4세 때 덴마크에 입양됐는데 수년 전 한국을 방문, 친부모를 찾아봤으나 별무소득이었다고 한다.
난 수영도 못하고 또 파티 애니멀도 아니어서 칸쿤을 십분 즐기지는 못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도착한 날 밤 숙소 앞 모래밭에서 어미 거북이의 산란을 관찰했다.
거대한 거북이가 자기가 판 모래구덩이 안에서 두 앞발로 계속해 모래를 퍼내면서 알을 낳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출산에 지친 산모 같았다. 거북이 옆에는 탁구공만한 알들이 180여개가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들어보니 매우 가벼웠다. 용왕의 바다 속 택시인 거북이가 산란기를 맞아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와 새끼를 낳는 것을 보는 것은 거의 초자연적인 경험이었다. 자연의 신비와 경이에 내가 작아짐을 느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파도 자락을 밟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매일 밤 소개된 영화의 이름을 따 열린 파티에는 이번 행사에 초청된 배우와 감독들도 참석했는데 해럴슨은 악동 같았고 존 큐색은 얌전히 앉아 시가를 태웠고 오는 11월에 개봉될 지구 종말 영화 ‘2012’를 감독한 롤랜드 에머릭은 새파랗게 젊은 보이 프렌드와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음식이라곤 라면 밖에 끓일 줄 모르는 나는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오믈렛을 직접 만들어 봤다. 지난 7일 개봉된 요리영화 ‘줄리와 줄리아’도 이번행사에서 소개됐는데 나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동료 회원들에게 요리 강습이 제공됐다. 앞치마를 두르고 셰프 로리 더나웨이로부터 오믈렛 요리법을 배운 뒤 실습에 들어갔다. 내가 만든 오믈렛은 모양은 볼품없었지만 먹어보니 맛은 괜찮았다.
이번 행사에서 소개된 영화 중 가장 큰 것은 ‘2012’. 큐색이 주연하는 대형 재난영화로 지구의 육지가 함몰되면서 바다가 땅을 뒤덮어 세상 종말이 온다는 얘기다. ‘인디펜던스데이’와 ‘내일 다음 날’ 등 재난영화 전문인 에머릭의 솜씨가 역력했는데 예고편만 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은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지에서 형성된 마야문명의 산물인 마야 달력이 예언한 지구 종말의 해에서 따온 것이다.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 지식을 가졌던 마야민족은 2012년 12월 21일에 이 세상을 끝낼 대재앙이 온다고 예언했다.
우리는 칸쿤을 떠나기 전 날 칸쿤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지인 치첸 이차를 찾아갔다. 정교하게 건축된 거대한 피라밋이 석양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 엘도라도에 도착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피라밋 꼭대기 제단에서는 산 인간을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열렸는데 이런 얘기는 율 브린너와 조지 차키리스가 나온 ‘태양의 왕들’(1963)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우리를 인솔한 멕시칸 안내원은 유적에서 제물로 바쳐진 남녀의 해골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지구환경과 생태계에 해를 끼치면서 지구와 대기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할리웃이 대재난 영화를 계속해 만들고 있는 것도 이런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부터 따져 2012년 12월21일까지는 1,224일 정도 남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세상 종말을 맞을 준비를 하겠는가.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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