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8일 박찬욱 감독(46·사진)을 처음 만나고 나서야 그가 왜 자기 작품에서 계속 폭력을 다루는가를 알게 됐다. 올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탄 죄와 구원을 다룬 흡혈귀 스릴러 다크 코미디 ‘박쥐’(Thirst-평 위크엔드판)의 LA 개봉 홍보차 이곳에 온 박 감독은 “나는 인생과 사회의 중요한 요소인 폭력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하는 작가”라면서 “그것이 어떻게 당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또 가해자에게는 어떤 죄의식을 주는지를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똑똑하고 야무지게 생긴 박 감독은 차분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질문에 답했는데 매우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칸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를 비롯해 그가 자신의 여러 영화에서 행사하는 폭력을 늘 꺼림칙하게 생각해 왔었다. 왜 뛰어난 재주를 저렇게 소모하는가 라고 안타까워했는데 이제야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랑처럼 인생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폭력을 자기 작품의 근본 주제로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도 관객은 그의 ‘폭력 영화’를 자주 보게 될 것인데 박 감독은 자기의 폭력이 사람들에 의해 다소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결코 염세적이거나 어두운 사람이 아니라며 미소를 지었다.
자기 영화를 스릴러라기보다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박 감독은 자신의 단골 주제이다시피 한 죄와 구원에 대해서 “그것은 오래 전부터 문학과 영화가 다뤄온 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면서 “진지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연구하게 마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기는 죄와 구원 그 자체보다 죄를 짓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노력 자체의 숭고함과 그 과정의 어려움을 말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박 감독은 고교 때 동네 본당신부가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를 추기경감이라며 신학교에 보내라고 건의하는데 놀라 가톨릭을 떠났다. 지금은 무신론자.
박 감독이 영화에 자기 삶을 걸기로 한 것은 히치콕의 ‘환상’(Vertigo) 때문이다. 그는 이 영화를 3분의1쯤 보는 순간 자기는 영화 외에는 절대로 딴 일을 못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영화 한다는 일이 쉽지 않아 첫 두 작품이 흥행에서 망하면서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5~6년간 비평가로 지냈다. 그가 큰 영향을 받은 또 다른 감독은 한국의 김기영.
그는 “과거의 경험을 재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서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흥행성공은 절대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과거 비평가 경험 때문에 자기 영화에 혹평을 하는 비평가에게도 관대한데 한국에서의 문제는 팬들이 전문가들의 말에 오불관언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박 감독은 한국 영화의 외국에서의 성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그와 홍상수와 김기덕은 외국 특히 유럽에서 인정하는 한국의 3인방 감독. 박 감독은 “모험적이요 모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해 이익을 내고 영화제서 상을 받고 또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컬트 추종자들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쥐’는 할리웃의 메이저인 유니버설의 자회사로 예술적 영화를 만드는 포커스가 한국과 공동으로 제작비를 댄 최초의 영화다.
할리웃의 유수 연예 대행업체인 윌리엄 모리스 소속인 박 감독에게는 할리웃으로부터 많은 극본이 도착하는데 아직 이것이다 라고 정한 것은 없었다고. 그는 “그러나 죽기 전에 상업영화의 본향인 할리웃에서 단 한 편만이라도 만들고 싶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출신으로 원래 영화가 하고 싶었지만 그 때만 해도 영화는 터프가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엄두를 못 냈다. 철학과에 들어간 것은 영화와 비슷한 미술평을 하고 싶어서였는데 입학 후 사진반에 들어가고 영화서클을 구성하면서 영화에 대한 집념을 못 버리다가 결국 감독이 되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한국 영화계가 올 들어 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박 감독은 후에 어떤 감독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느냐는 물음에 “남들이 잘 보려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측면 특히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려고 애쓴 감독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박찬욱을 폭력에의 도전자라고 불러도 좋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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