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작가는 구별돼 비판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함께 비판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19세기의 위대한 음악가 바그너(사진)의 4부작 대하악극 ‘링’이 공연될 때마다 논의되는 이슈다. 그 것은 단순히 음악의 범주를 너머 인류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링’을 작곡한 바그너가 혐오할 만한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바그너 논쟁이 이번에는 LA에서 일어났다. 마이크 안토노비치 LA카운티 수퍼바이저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내년 4월부터 6월까지 계속되는 ‘링 페스티벌 LA’의 초점을 바그너에서 슈베르트와 슈만과 멘델스존 등 다른 작곡가들로 다양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바그너 축제가 나치들에게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욕이기 때문이라는 것.
‘링’ 축제는 LA 오페라 사상 처음으로 3차례에 걸쳐 전 사이클을 공연하고 아울러 세미나와 전시회 등 각종 관련 행사들로 꾸며진 초대형 행사다. 이와 관련 ‘링’ 사이클의 첫 두 번째 작인 ‘라인골트’와 ‘발키리’는 올 초에 공연됐다. ‘링’ 축제에서 바그너를 희석시키라는 안토노비치의 요구는 속된 말로 앙꼬 빵에서 앙꼬를 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쇼팽과 리스트도 반유대주의자들이었지만 바그너가 특히 논란의 표적이 되는 까닭은 그의 음악이 나치스의 상징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바그너에 심취해 ‘링’의 주인공 중 하나인 지크프리트를 아리안족의 심벌로 삼았다. 또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지’ 서곡은 나치 전당대회의 주제곡으로 사용됐고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개스실로 끌려갔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직도 바그너 음악을 금기시하고 있는데 이를 처음으로 깬 사람이 유대인 지휘자로 ‘링’ 사이클의 명해석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그는 지난 2001년 7월 예루살렘에서 열린 이스라엘 축제에서 베를리너 슈타츠카펠레를 지휘,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일부를 연주했었다. 이 연주는 당시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또 다른 유대인 지휘자로서 바그너의 ‘링’을 연주한 사람은 메트 오페라의 상임 지휘자인 제임스 리바인 이다.
나는 작품과 작가는 별도로 비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렌보임은 “바그너를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그의 음악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 사람들의 손에 놀아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링헤드’인 내 친구 C도 “안토노비치의 생소하고 해괴한 건의는 바그너의 음악보다도 그와 그의 반유대주의를 연계한 히틀러와 나치스의 잔혹한 행위로 바그너가 마치 유대인 학대의 장본인으로 인식된 데서 온 것 같다”면서 “작품과 작가의 구별된 비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바그너는 사후에 히틀러의 정치적 목적에 사용됐지만 히틀러 생존 때 그에 동조한 음악가들과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친구 C가 제일 좋아하는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는 철저한 나치즘 신봉자였다. 비디오 ‘제3제국의 위대한 지휘자들’을 보면 푸르트뱅글러가 대형 나치 문장기가 걸린 무대에서 베를린 필을 지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한 뒤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와 악수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는 전후 연합군 측에 의해 나치즘 동조자로서 심문을 받았는데 이 얘기는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주연한 영화 ‘테이킹 사이즈’에서 재현됐다. 또 다른 유명 지휘자 칼 뵘도 히틀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노르웨이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크누트 함순(맥스 본 시도가 나온 영화 ‘함순’ 참조)과 실존주의 철학의 태두 하이데거 그리고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영화 ‘올림피아’의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탈 등도 다 나치즘 동조자들이었다. 안토노비치의 주장대로 하자면 이들의 음반과 책과 영화 등에도 모두 금지처분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안토노비치의 제의는 지난 22일 수퍼바이저위 회의에서 부결돼 LA의 ‘링’ 서커스는 짧게 끝났는데 부결에 앞장 선 사람은 유대인인 제브 야로슬라브스키였다. 그런데 안토노비치는 비유대인이다.
친구 C는 “반유대주의로 희생된 많은 유대인들의 슬픈 과거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또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나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바그너의 예술을 곡해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반유대주의를 이길 수 있는 길인 관용과 이해가 바그너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그렇다.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배척은 또 다른 형태의 불관용일 뿐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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