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난 1일 97세로 할리웃 스타들이 많이 사는 LA 서쪽 브렌트우드의 자택서 사망한 칼 말덴(Karl Malden)의 연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은 고교생 때 본 ‘워터프론트’(1954)에서였다.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이 영화에서 제수이트 신부로 나온 그는 노동판을 찾아가 깡패집단으로 구성된 뉴욕 부두노조의 횡포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일어서 대항하라”고 열변을 토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연기로 주연인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그는 이 연기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말덴의 사망 소식을 듣자니 지난 2005년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해 1월17일 기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가 마련한 연례 각 부문 베스트를 위한 시상만찬 때였다.
우리는 그 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배우 리처드 위드마크(지난해 93세로 사망)를 선정했는데 당시 코네티컷에 살던 그는 노령으로 비행기 여행이 힘들어 자기 평생 친구인 말덴을 대신 내보냈었다.
나는 만찬 전의 칵테일 시간에 홀을 어슬렁대다가 아내와 딸과 사위와 함께 있는 말덴을 목격했다. 말덴의 트레이드마크인 주먹코가 내 눈에 클로스업되면서 나는 너무나 반가워 의자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덥석 잡고 “만나서 영광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수목’ 등 웬만한 당신의 영화는 다 봤지요”라고 말하자 그는 “응, 게리 쿠퍼”하면서 그 영화에서 공연한 쿠퍼의 이름을 대더니 “당신은 아직 소년이야”라며 웃었다. 매우 상냥하고 어질고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어 말덴이 악역을 한 웨스턴 ‘애꾸눈 잭’(1961)등 그의 영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식장으로 들어가기 전 내게 “어디가 제일 좋은 한국식당이냐”라고 물었다. “내가 한번 한국식당엘 초청하겠다”고 말한 것이 말덴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러나 이 다짐은 이뤄지지 못했다.
구근처럼 생긴 코에다 매우 평범한 얼굴을 한 말덴은 자기가 결코 주연배우가 될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성격배우로 스스로를 키웠다. 그는 못 하는 역이 없었던 ‘에브리맨’이었는데 물론 대부분의 역이 조연이었다.
그러나 ‘워터프론트’와 그가 오스카 조연상을 탄 역시 카잔이 감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 볼 수 있듯이 말덴의 연기는 주연배우들의 그것을 거의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 그는 스티브 매퀸이 주연한 ‘신시내티 키드’에서는 포커게임 딜러로 나오는데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연기를 했다.
생애 50여편의 영회에 나온 말덴은 많은 다른 연기파 배우들처럼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기량을 닦았다. 그의 연기 생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이 때 만난 카잔이다. 말덴은 카잔이 죽을 때까지 그와 친구로 지냈는데 지난 1999년 1950년대 초 미연방하원의 반미국적행위 조사위에 출두, 동료 영화인들을 빨갱이로 고발한 카잔에게 아카데미 명예상을 주도록 제의한 장본인도 말덴이었다. 말덴은 이 전에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었다.
말덴이 주연한 또 다른 카잔의 영화로 얄궂게 선정적인 ‘베이비 달’(1956)이 있다. 그는 여기서 10대의 섹시한 아내(캐롤 베이커)를 둔 성마른 중년 남자로 나와 역시 명연기를 했다. 말덴은 조지 C. 스캇이 패튼 장군으로 나와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패튼’에서는 오마 브래들리 장군으로 나왔다.
영화에서의 말덴을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지난 197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ABC-TV의 경찰 드라마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의 루테넌트 마이크는 기억할 것이다. 말덴은 여기서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공연했는데 이 시리즈는 5년간이나 방영되는 인기를 누렸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보다 더 유명한 말덴의 TV 작품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다. 지난 1973년 처음 선을 보인 뒤로 20여년간 계속된 이 광고에서 말덴이 말한 “돈 리브 홈 위다웃 뎀”은 거국적 캐치프레이즈처럼 됐었다. 그런데 말덴은 사람들이 자기를 연극이나 영화보다 이 광고로 더 잘 기억하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고 피력한 바 있다.
시카고 태생으로 인디애나 게리에서 성장한 말덴은 젊은 시절 강철공장 노동자와 우유배달부 노릇을 하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가 숨질 때 곁에는 7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 모나가 있었다. 굿바이 미스터 말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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