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것이 범죄와 부패다. 1920년대 금주령 시대 시카고 남부를 말아 먹으며 밀주로 치부한 이탈리아계 갱두목 ‘스카페이스’ 알 카폰이 라이벌 갱에 대해 저지른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 학살’은 시카고를 미 최대의 범죄도시로 승격시켜 준 사건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카고는 범죄와 부패 스캔들을 심심찮게 뿌려왔는데 지난 주 갱영화 ‘공공의 적들’(Public Enemies-7월1일 개봉)의 프레스 정킷 차 방문한 시카고에서 만난 크리스천 베일도 “이 도시는 지금도 부패해 있다”고 한 마디 했다.
그의 이 말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공석이 된 일리노이의 연방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로드 블라고예비치 전 주지사와 롤랜드 부리스 현 연방상원의원 간의 매관매직 협상 스캔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블라고예비치는 탄핵됐지만 부리스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카폰 못지않게 시카고를 대표하는 갱스터가 인디애나 깡촌 출신의 은행 강도 존 허버트 딜린저다. 경제공황기인 1933년부터 1934년 7월22일 시카고의 바이오그래프 극장 옆 골목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불과 1년간 시카고를 주거지로 삼고 미 중서부를 휩쓸고 다니면서 은행을 턴 딜린저는 FBI의 ‘공공의 적 제1호’였다.
그런데 멋쟁이인데다가 건방지고 대담무쌍하며 또 카리스마가 있는 딜린저는 경제공황 시대 서민들이 증오하던 은행을 털어 그들로부터 민중의 영웅대접을 받았다(이 점에서 역시 경제공황 시대 활약한 연인 갱 바니와 클라이드와 유사하다).
딜린저는 사람이 좋고 잔인무도한 폭력자는 아니었지만 은행강도인 그를 의적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카고의 기자회견서 만난 딜린저 역의 자니 뎁과 감독 마이클 맨도 딜린저를 극구 옹호했다.
둘은 딜린저가 비록 무법자이긴 해도 집과 농토를 차압하는 은행과 경제문제를 해결 못하는 정부기관을 공격,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중의 분풀이를 대신 해준 로빈 후드라고 옹호했다. 그래서인지 ‘공공의 적들’은 딜린저를 매우 로맨틱하게 묘사하고 있다(자니 뎁은 어떤 악인으로 나와도 미워할 수 없는 배우이긴 하지만).
제작사 유니버설의 초청을 받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은 뎁과 맨 외에도 딜린저를 잡은 1등 공신 FBI 요원 멜빈 퍼비스 역의 베일과 딜린저의 애인 빌리 역의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장밋빛 인생’으로 오스카 주연상)도 만났다. 이들 역시 딜린저를 신사 은행강도라고 추켜세웠다. 나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악인이 선인보다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칭찬이 좀 지나치구나 하고 생각했다. 딜린저 얘기는 워렌 오츠가 주연한 ‘딜린저’(Dillinger·1973)에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는데 여기서도 역시 그가 로맨틱하게 묘사됐다.
딜린저는 법집행기관 알기를 우습게 안 대담하고 신출귀몰하는 범죄자였다. 그는 시카고의 ‘공공의 적 제1호’ 수사본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내부를 시찰하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딜린저의 수사당국에 대한 오만한 멸시태도는 그가 인디애나의 크라운 포인트에 구류 중 찍은 유명한 사진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카운티 검사의 왼쪽 어깨에 자기 오른쪽 팔을 걸친 채 교활한 미소를 지으면서 으스댔다 <사진>.
지난 19일 시카고의 날씨는 오전 내내 천둥번개에 우박과 비와 안개가 번갈아가며 광녀의 심술처럼 요사를 떨더니 오후에야 진정이 됐다. 우리는 넥타이에 기관총 모양의 핀을 단 안내원이 익살을 떨며 설명을 하는 ‘언터처블 갱스터 투어’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안내원은 우리에게 가짜 권총을 들이대고 “돈과 보석 다 내놔”라고 협박을 했다.
제일 가보고 싶던 링컨 애비뉴에 있는 바이오그래프 극장 앞에서 내렸다. 딜린저는 수사요원들에게 사살되던 날 애인 폴리와 폴리의 하숙집 주인 안나(딜린저는 그의 밀고로 죽었다)와 함께 클라크 게이블이 갱스터로 나온 ‘맨해턴 멜로드라마’를 봤다.
딜린저는 하오 10시반께 영화가 끝나 극장을 나오다가 낌새가 이상해 극장 옆 골목길로 달아나다가 잠복 중이던 수사요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 31세로 여인들이 딜린저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에 손수건들을 적셨다고 한다.
우리는 극장 앞과 딜린저가 쓰러진 골목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올라 시카고 강가에 있는 카폰의 밀주집(스피크이지) 앞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LA로 돌아오는 이튿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쨍쨍 내려쬐였다. 그런데 끈적거렸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