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지난 15일과 22일 개봉된 ‘천사들과 악마들’과 ‘박물관의 밤: 스미소니언 전투’의 프레스 정킷차 지난 주 뉴욕과 워싱턴 D.C.엘 다녀왔다. 이번 뉴욕행은 생명력 넘치고 농담 잘하고 사람 좋은 탐 행스를 만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나의 또 다른 목적은 카네기 홀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프레스 정킷차 뉴욕엘 들를 때마다 나는 매번 센트럴팍 인근의 숙소에서 가까운 카네기 홀을 구경 가곤 했다. 시간과 프로그램 관계상 그동안 한 번도 홀에서 음악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냥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클래시컬 뮤직의 전당 주변을 빙빙 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카네기 홀의 모습을 처음 사진으로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 때 나는 뉴욕에 사는 미 여고생과 펜팔 관계였는데 어느 날 소녀가 보내온 편지에 카네기 홀의 흑백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때 막 클래시컬 뮤직에 귀를 기울이던 내게 잿빛 카네기 홀은 막연한 동경의 염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LA를 떠나기 전 컴퓨터로 카네기 홀 공연일정을 찾아 봤더니 6일부터 17일까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 9곡을 연대순으로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 연주한다고 실렸다. 지휘는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피에르 불레즈가 번갈아가며 했다.
나는 뒤늦게 알게 된 말러의 교향곡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됐는데 카네기 홀에서 바렌보임의 지휘로 4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 연주하는 말러를 들을 기회가 온 것에 작은 흥분감마저 느꼈다.
행스를 만난 13일 저녁이 자유로워서 하오 5시30분께 카네기 홀에 갔더니 매표원이 표가 매진 됐다며 취소표가 있을지 모르니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다행히 취소된 표 1장을 구해 메인 홀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에 들어섰다. 유럽식 홀 내부는 5층으로 돼 있는데 고풍이 느껴지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말러는 생애 말기인 1909~1911년 뉴욕 필의 상임지휘자로 있었는데 그는 1911년 2월21일 카네기 홀에서 멘델스존의 ‘이탈리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지휘한 뒤 몇 달만에 빈에서 심장병으로 51세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는 1908년 뉴욕 메트의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이곳에서 뉴욕 심포니를 지휘해 자신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초연했다. 1세기 전 말러가 섰던 장소에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면 이성과 사유 그리고 감성과 정열의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자가 되곤 한다. 그의 음악은 너무나 심오하고 어렵고 복잡하며 또 방대하고 요구하며 길어 듣기에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한데 하나의 큰 오묘한 혼란과도 같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과연 나는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언제나 우주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일까.
말러의 교향곡을 피에르 불레즈는 이렇게 분석했다. “말러는 교향곡의 고상한 세계에 연극조의 표현과 감상성과 조야함 그리고 무례하고 참을 수 없는 무질서의 씨를 심었다.” 물론 이 말은 칭찬의 말이다.
말러의 교향곡은 대부분 고뇌와 비애 그리고 체념과 절망과 투쟁 뒤에 삶과 구원의 희열과 환희로 끝난다. 종교적 체험과도 같은데 특히 그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 들은 취주악대의 연주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금관악기들의 소리는 가히 천상의 그것이라고 하겠다.
13일의 공연은 말러의 송 사이클 ‘방랑자의 노래들’로 시작됐다. 이 노래들은 실연당한 남자의 체념과 아픔을 그린 것으로 바리톤 토마스 햄슨이 부드럽고 풍성한 음성으로 가슴 아프도록 아름답게 노래 불렀다.
이어 연주시간 80분에 가까운 교향곡 제7번이 연주됐다. 이 곡은 흔히 삶의 찬가라 불리는데 말러의 말대로 “상서롭게 시작돼 행복하게 끝난다.” 제1악장은 자연의 장엄미를 감각케 하면서 아울러 애조가 가득한데 금관악기와 현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밝음과 어둠의 대조를 힘차고 정서 있게 표현했다.
말러가 ‘밝은 날’이라고 말했듯이 제5악장 피날레는 환희 일색이다. 금관악기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거의 희한할 정도로 리듬이 제멋대로 날뛰는데 불레즈의 말처럼 무질서해서 듣는 사람의 정서를 뒤흔들어 놓는다. 바렌보임의 지휘는 무던했다. 좋은 저녁에 감사하고 이튿날 짐을 싸 D.C.로 떠났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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