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여년 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보고 놀란 것이 거리와 산과 들에 내걸린 각종 구호가 적힌 대형 간판들이다. 통일과 자주국방과 식량증산을 격려하는 구호와 함께 미제를 박살내자는 글이 적힌 선전판들을 보면서 미국서 온 나는 공연히 찔끔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특히 잊히지 않는 것은 금강산에 갔을 때 커다란 암벽마다 빨간 페인트로 새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찬양문구였다. 명산의 얼굴이 완전히 싸구려 화장을 한 꼴이었다.
공산 전제국가들은 충동적인 포스터를 국민 선동용으로 써왔다. 특히 영화나 미술 같은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잘 썼는데 스탈린의 소련이 그 대표적 사례다. 북한의 선전용 간판과 포스터는 국민을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의 외길로 몰고 가는 구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과 함께 구호가 적힌 북한의 포스터 400장과 그 내용을 설명한 책 ‘북한의 포스터’(North Korean Posters)가 프레스텔(Prestal)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미술품 수집가 데이빗 헤더가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구입한 것이다.
화려한 색채화와 끝에 느낌표로 강조된 선동적인 구호가 적힌 포스터들은 이 비밀국가의 선전미술의 진면목과 함께 북한의 정치, 군사, 사회 및 역사 등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림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법으로 북한 인민군과 국민들의 영웅적 행위와 노동자 천국 건설 그리고 김일성 부자 찬양과 함께 반미 반일적 내용을 그렸다.
붉은 색을 주조로 청색과 금색이 많이 사용됐는데 간단명료하고 구체적인 그림 속 인물들이 주먹을 불끈 쥐거나 입을 크게 벌려 외치면서 찬양과 타도와 격려를 해 역동감을 느끼게 된다. 책은 5개의 챕터로 돼 있다.
제1 챕터는 ‘인민의 낙원 건설’. 식량 및 석탄 증산과 집짐승 많이 기르기 그리고 농기계의 현대화와 과학과 방역을 비롯해 절수와 절전 등 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길을 장려하는 내용.
제2 챕터는 ‘불굴의 도전’. 온통 반미 반일 내용으로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사악한 일란성 쌍둥이로 보고 있다. 많은 그림들이 거대한 인민군의 주먹과 총검이 코가 뾰족한 미군들을 박살내는 내용<사진>으로 미군은 공포에 질린 소인으로 그려졌다. 그림과 구호가 무시무시해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제3 챕터는 ‘충성과 헌신’. 선군정치와 수령 결사 용위 및 공화국의 자주권을 강조했다. 인공기가 그려진 미사일이 서 있는 포스터에는 ‘우리의 미싸일 계획은 세계 평화와 안전의 담보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너희들 까불면 핵미사일로 까버리겠다”고 공갈을 치는 것 같다.
제4 챕터는 ‘혁명 수호’. ‘김정일의 사회주의는 과학’이라며 주체사상과 혁명을 강조하고 로동당을 찬양하고 있다. 섬뜩한 것은 수류탄을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인민군을 자폭용사와 육탄영웅으로 찬양하는 그림들. 국가와 사상을 위한 철저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제5 챕터는 ‘뭉치면 산다’. 통일이 대주제인 여기서는 수영, 농구, 태권도 등 스포츠와 예쁘게 한복으로 차려 입은 여인들이 윷놀이를 하는 모습을 통해 민속놀이를 장려했다. ‘민족, 핏줄, 언어, 이 땅, 문화, 력사가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의 꽃 임수경 석방을 촉구한 것도 보인다.
내가 북한에 갔을 때 느낀 것은 북한 사람들이 비록 잘 살지는 못해도 자존심 하나만은 대단하다는 점. 그런 사실을 보여나 주듯 마지막 챕터에는 ‘조선을 축으로 지구가 돈다!’는 포스터도 포함돼 있다.
때마침 LA타임스에서 북한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가 있다는 기사를 읽어 소개한다. 미정보부에서 20년간 일하면서 북한의 신문 사설들이 함축한 선전 의미를 해석해 온 저자 제임스 처치(가명)는 그동안 북한을 30여차례 다녀온 북한통.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인 북한 공안부 요원(형사) 오가 애국자이면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불신한다는 사실.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는 평양 고려호텔의 외국인 투숙객 피살사건에 관한 ‘고려의 시체’(A Corpse in Koryo), 평양 최초의 은행 강도사건을 다룬 ‘숨겨진 달’(Hidden Moon)과 북한의 대아랍국가 미사일 판매를 저지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을 그린 ‘대나무와 피’(Bamboo and Blood) 등. 곧 나올 네 번째 시리즈는 김정일의 후계문제를 다루게 된다고 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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