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스카 조연상을 두 번이나 탄(‘한나와 자매들’ ‘사이더 하우스 규칙’) 영국의 베테런 배우 마이클 케인(76)이 한국전 참전용사인 줄을 지난달 그를 인터뷰 하면서 비로소 처음 알았다.
케인은 지닌 달 초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미 서부지역 최대 극장주들의 모임인 쇼웨스트에서 생애업적상을 받았는데 나는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으로서 이 쇼에 참석했다가 케인을 만났다.
인터뷰 후 케인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 그가 나더러 “당신 어디서 왔소”라고 묻기에 난 “한국서 왔소”라고 대답했더니 케인은 “나 1951년에 한국전에 참전했었지”라며 반가워했다. 케인은 이어 “우리가 네 나라를 구해 줬으니 당신은 내게 빚이 있어”라면서 “밥 한끼 사라”고 익살을 떨었다. 그래서 난 “술 한잔 사지요”라고 제의했더니 그는 “예스”라고 대답. 과연 이 다짐이 실현 될지는 지극히 의문이지만.
이어 칵테일 리셉션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당신 진짜 총 들고 싸웠소”라고 물었더니 케인은 “나 보병이었다”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한국 영화는 본 것이 없다고.
케인이 처음으로 중요한 역을 맡은 ‘줄루’(1964)로부터 이번 인터뷰의 대상인 ‘거기 누가 있어요?’(Is There Anybody?-현재 상영중)에 이르기까지 근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그의 많은 영화들을 본 나는 그가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 칵테일장에서도 그의 곁에 바싹 붙어 함께 얘기를 나눴다.
대화가 끝나고 다시 한 번 케인과 기념사진(사진)을 찍을 때 내가 그에게 “우리나라를 구해줘 고맙다”라고 말하자 케인은 “그래, 내가 김일성으로부터 너의 나라를 구해 줬지”라며 크게 생색을 냈다. 김일성 발음이 분명해 또 한 번 놀랐다.
케인은 매우 서민적이고 솔직하며 겸손한 데다가 유머가 짓궂을 정도로 많다. 질문에 정직하고 자상하게 답하면서 시종일관 시치미 뚝 떼고 익살을 떨어 회견동안 내내 깔깔대고 웃었다. 인터뷰하기가 아주 편하고 즐거운 배우다.
케인이 서민적인 것은 그가 런던의 근로자 동네인 이스트엔드의 카크니로서 고생을 하며 자란 성장배경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수산시장 짐꾼이었고 어머니는 청소부였다. 케인은 인터뷰에서 “난 가난했고 공부도 못한 데다가 군인으로서 온갖 역경을 거친 뒤 성공했기 때문에 빅 스타를 포함해 이 세상에서 날 감동시키는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나는 여왕이나 청소하는 여자를 모두 똑같이 대우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영국 왕실에서 준 작위 ‘서’를 자기 이름 앞에 붙여 부르는 것보다 그저 “마이클”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케인은 ‘거기 누가 있어요?’에서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은퇴한 마술사로 나와 자연 늙음에 관한 물음이 나왔다. 케인은 우아하게 늙는다는 것에 대해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비결”이라면서 “삶을 계속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늙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면서 “늙는 것 말고는 죽는 것밖에 없으니 당신 같으면 어느 걸 택하겠느냐”고 익살을 떨었다.
그리고 몸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기는 그 때문에 좋아하던 시가도 12년 전에 끊었다고 알려줬다. 나는 케인에게 “술은 어느 정도 마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저녁에 반주로 포도주 한 잔 정도 한다. 난 절대로 취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인지 흰 머리에 금테 안경을 낀 케인은 건강하고 신선한 모습이었다. 케인은 “생애업적상은 고맙긴 하지만 이런 상을 받으면 사람들이 배우로서 내 인생이 다 끝난 줄 오해한다”면서 “난 38세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 않아 지금도 뛸 때만 빼고는 날 38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언제나 일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내게 은퇴란 없다”고 덧붙였다.
케인과 은퇴한 션 코너리는 친구 사이여서 나는 케인에게 코너리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케인은 “션과는 3주 전에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지금 스코틀랜드에 관한 책을 쓰면서 인생을 즐기고 산다”며 “장담컨대 그는 절대로 컴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인은 반년 전에 둘째 딸에 의해 첫 손자를 봤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손자에게 어떤 삶의 예지를 가르쳐 주겠는가”라고 물었더니 케인은 “어려움을 이용하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케인은 인도계로 미스 가이아나 출신인 두 번째 부인 샤키라(60)와 영국 남동부 런던 교외의 서리에서 정원 가꾸고 요리하면서 살고 있다. 칵테일 리셉션에 남편과 함께 온 샤키라는 블랙 뷰티였다. 샤키라 역시 케인처럼 수수하고 친절했다. 케인은 아내를 “샤크”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시했는데 부부애가 보기 좋았다. 케인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보물은 가족”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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