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을 끝으로 LA를 떠나 런던으로 가는 LA필의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사진)은 지난 19일 마지막 연주곡으로 스트라빈스키가 ‘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든 장엄한 ‘시편 교향곡’을 지휘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로 시작,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로 끝나는 다윗의 노래에 바탕을 둔 이 곡은 겸손한 살로넨의 작별곡으로 잘 어울렸다. 그는 이 곡을 빌어 지난 17년간의 LA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를 드렸는지도 모른다.
1992년 33세에 LA필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살로넨이 이제 50세가 되어 LA필을 떠난다. 나는 지난 1995년 기자회견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에 홍조를 띤 살로넨은 조용한 목소리로 “나는 지난 1984년 처음 LA 필을 지휘하면서 미국에 데뷔했을 때 이 오케스트라와 음악적으로 운명 지어진 것을 느꼈다”고 말했었다.
그의 말처럼 살로넨과 LA필은 지난 17년간 단일 운명체로 연결돼 서로가 서로를 키웠다. 시벨리우스의 고향인 추운 나라 핀란드에서 따뜻한 도시 LA로 온 살로넨은 생소한 신세계에 살면서 개인적으로나 음악인으로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되었고” LA필은 그를 통해 음악성과 기량이 무성하게 자라 지금은 세계 굴지의 교향악단이 되었다.
특히 괄목할 만한 사실은 지휘자라기보다 작곡가인 열렬한 현대음악 신봉자인 살로넨에 의해 LA필은 과감하고 실험적인 신곡 연주의 산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퓰리처상을 받은 스티브 라이히를 비롯해 존 애담스와 스티븐 스터키 등의 신곡들이 모두 LA에서 초연됐다. 또 그는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그린 엄브렐라’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리고 살로넨 자신은 LA와 LA필에게 바치는 ‘LA 베리에이션스’와 자기 재임 중 건축된 디즈니 홀을 찬양한 ‘윙 온 윙’ 등 여러 신곡을 창작,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살로넨이 필하모니아 오브 런던의 지휘자 자리를 수락한 이유 중 하나도 보다 많은 시간을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나는 살로넨이 LA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지난 11일과 19일 두 차례 디즈니 홀을 찾아갔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살로넨의 LA 업적을 담은 짤막한 비디오 상영이 있었는데 살로넨은 여기서 “내가 어디서 무얼 하건 LA는 나의 집”이라면서 자신이 앤젤리노임을 다짐했다.
11일 프로그램은 리게티의 소리의 몽상인 관현악 소품 ‘시계와 구름’과 세계 초연인 살로넨의 신작 바이얼린 협주곡 및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으로 짜여졌다.
살로넨의 바이얼린 협주곡은 마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키듯 원시적이요 야수적인 정열과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어우러진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살로넨은 스트라빈스키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가의 기교와 활화산의 열기를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곡인데 가녀린 체구의 레일라 조세포비츠가 초인적 힘과 기교로 환상적인 연주를 했다. ‘운명’을 지휘하는 살로넨은 몸부림을 쳤다. 땀을 흘리면서 투신하듯 해 절망감마저 느끼게 했다. 마지막 지휘여서 그랬을까.
19일 하오 2시 살로넨의 진짜 마지막 지휘로 연주된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 오라토리오 ‘에디퍼스 왕’과 ‘시편 교향곡’은 서로 상관이 없는 곡들로 이번에 오페라 감독 피터 셀러스에 의해 전후편식으로 연결됐다.
죄와 가책과 속죄의 얘기와 구원과 재생과 환희의 노래를 극적으로 접목한 영적인 공연이자 연주였다. 음악이 끝나자 청중들은 뜨겁고 긴 박수로 살로넨을 떠나보냈다. 수줍음 많은 살로넨은 이에 허리를 절반으로 꺾어 답례했다.
내가 듣고 본 살로넨의 지휘로 연주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작품은 지난 2004년 12월에 공연된 ‘트리스탄 프로젝’이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교향악과 노래와 비디오 영상으로 표현한 종합예술이었는데 앉은 채로 승천하는 지고한 희열을 느꼈었다.
이번에 LA필의 ‘계관 지휘자’가 된 살로넨은 내년 시즌에는 후임자인 ‘분더킨트’ 구스타보 두다멜이 LA필을 자기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디즈니 홀에 서지 않는다. 2010~2011년 시즌에나 그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굿바이 살로넨”.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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