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에서 설쳐대는 소말리아 해적들 때문에 전 세계가 골치를 썩이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 미해군 특수부대가 해적들에게 납치된 미화물선 선장을 극적으로 구출, 큰 화제가 되고 있다(아마도 얼마 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해적들이 저지른 선박납치 건수는 100여건에 이른다. 이들은 화물선과 유조선 등을 닥치는 대로 납치, 선원들을 인질로 잡아 놓고 몸값 흥정을 벌이면서 떼돈을 노리고 있다. 소말리아가 해적들의 근거지가 된 까닭은 오랜 내전으로 나라가 무정부 상태인 데다가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이 죽기 살기 식으로 해적질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양에서 해적질이 심해지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해군함정을 파송하고 있으나 망망대해에서 해적들을 잡기란 볏단 속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힘들다고 한다.
해적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는데 특히 18세기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이 유명하다. 자니 뎁이 해적 선장 잭 스패로로 나오는 ‘카리브의 해적’ 시리즈도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흔히 해적 하면 신나는 노략질과 흥분되는 칼부림 및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해적은 살인과 강간, 약탈과 고문 등을 자행한 비열한 흉한들이었다. 우리가 해적을 로맨틱하고 이국적인 매력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을 마치 무슨 의적처럼 묘사한 소설과 영화 때문이다.
해적에 관한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적영화의 두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호주 태생의 절세미남 액션 스타 에롤 플린이 나온 ‘캡튼 블러드’(Captain Blood·1935·사진)와 ‘시 호크’(Sea Hawk·1940)다. 우리가 해적을 멋쟁이로 생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에롤 플린 때문이라고 해도 되겠다.
후에 ‘카사블랑카’를 만든 마이클 커티즈가 감독한 이 두 흑백영화는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가 잘 조화된 흥미진진한 명작들이다. ‘스와시버클러’라고 부르는 이들 칼부림 영화의 절정은 플린과 그의 적수가 벌이는 마지막의 펜싱 대결. 오스트리아 태생의 클래시컬 작곡가 어네스트 콘골드의 스릴 있고 의기양양한 음악을 배경으로 벌이는 플린의 칼솜씨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익사이팅하다.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든 해적영화 중 재미있는 것이 ‘검은 수염’(Black Beard·1952). 무성하게 자란 긴 검은 수염을 리번으로 장식하고 18세기 초 카리브해를 말아 먹던 검은 수염은 현상금을 노린 자에 의해 목이 달아나는 비운을 맞았는데 영화에서는 로버트 뉴턴이 호언장담식의 연기를 한다. 뉴턴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보물섬’(Treasure Island·1951)에서도 해적 롱 존 실버로 나온다.
그리고 16세기 말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도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는데 큰 공헌을 한 프랜시스 드레이크경도 여왕의 재가를 받은 해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자해적만큼이나 유명했던 여해적 앤 보니도 실제인물이다. 앤은 남장을 하고 애인인 해적두목인 칼리코 잭과 노략질을 했는데 후에 개과천선, 아이를 여덟이나 낳고 잘 살다가 80대로 죽었다고 한다. 앤의 얘기는 하워드 휴즈의 애인이었던 예쁜 진 피터스가 나온 ‘인도제국의 앤’(Anne of the Indies·1951)에서 화려하게 그려졌다.
내가 중학생 때 너무나 재미있게 본 해적영화가 버트 랭카스터가 나온 ‘진홍의 도적’(The Crimson Pirate·1952)이다. 액션과 웃음이 가득한 오락영화의 백미로 서커스 출신의 랭카스터가 해적선의 이 돛대에서 저 돛대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칼질을 한다. 비겁하고 측은하기까지 한 해적 선장의 대표로는 디즈니의 만화영화 ‘피터 팬’(Peter Pan·1953)에서 악어에게 왼팔을 먹혀 악어 노이로제에 걸린 캡튼 후크를 들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 전 집에 있는 해적들이 즐겨 마시는 럼을 한 두어 잔 마셨다. 푸에르토리코 산인 캡튼 모간으로 도수가 35도나 되는 독주다. 오른 손에 장검을 짚고 왼발로 술통을 밟고 있는 상표로 잘 알려진 모간은 17세기 실존했던 웨일스 태생의 허가 받은 해적 헨리 모간이 모델이라고 한다.
럼은 미국의 3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스의 유명한 노래 ‘럼 앤 코카-콜라’에서처럼 코크와 칵테일해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이프 유 에버 고 투 트리니대드/데이 메이크 유 필 베리 글래드/중략/개런티 유 원 리얼 굿 화인 타임/드링킨 럼 앤 코카-콜라/고 다운 포인트 쿠마나.’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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