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11월 중순 영화 ‘프로스트/닉슨’의 프레스 정킷차 뉴욕에 갔을 때 맨해턴 5th 애비뉴에 있는 티파니 보석상을 구경한 바 있다. 지난해는 티파니를 전 세계에 알려준 트루만 카포티의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이 출간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나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여자 안내원에게 “정말 여기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웃으면서 “노”라고 대답했다. 가게 안을 오락가락 하면서 보석 구경을 하는데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하나가 몇십만달러. 나는 혀를 차면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최고의 친구’라는 말이 맞긴 맞구나 하고 생각했다.
티파니는 어쩌면 소설보다 이 글을 바탕으로 만든 오드리 헵번 주연의 1961년작 동명영화(이영화와 함께 역시 헵번의 로맨틱 뮤지컬 ‘Funny Face’특집판 DVD 최근 출시)로 대중의 마음에 동경의 장소로 남게 되었다고 해도 좋겠다.
영화는 헨리 맨시니의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인적이 끊긴 새벽 파티걸 할리 골라이틀리가 택시에서 내려 티파니의 진열창 안을 들여다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도 티파니에 갔을 때 할리 흉내를 냈었다.
지방시 검은 드레스(경매에서 80만달러에 팔렸다)를 입고 보석으로 잔뜩 치장한 할리가 초록색 안경 속의 커다란 눈으로 보석 구경을 하면서 커피와 함께 들고 온 봉투에서 빵을 꺼내 먹는 모습이 하늘에서 잠깐 맨해턴에 내려온 천사와도 같다. 바로 이것이 티파니에서의 아침이다. 그런데 할리는 이 새벽에 어디서 오는 것일까.
끼니를 굶은 요정 같은 헵번의 청순미가 새벽공기처럼 신선한데 이것과 함께 헵번이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태우던 긴 담뱃대만한 물부리를 든(사진) 모습으로 헵번과 할리는 하나처럼 되었다.
텍사스 촌닭 출신인 할리는 자유혼과 독립심을 지닌 여자이면서도 다치기 쉬운 가슴을 지녔다. 할리가 시골집을 가출해 뉴욕에 온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젊음과 예쁜 얼굴이 전 재산인 할리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돈 많은 남자들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할리는 파티걸로 묘사되지만 사실 할리는 고급 창녀다.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의 이 영화는 달콤쌉싸름한 로맨틱·풍속 코미디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우한 과거에서 탈출하기 위해 돈 많은 낯선 남자들의 호의에 기대야 하는 한 여인의 생존 투쟁기이다. 그래서 티파니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할리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티파니는 할리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환상의 처소이다.
그런데 힘들고 찌든 과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할리를 연민하면서도 왜 하필이면 ‘1시간 대화에 100달러를 받는’ 여자가 돼야 했을까 하고 묻게 된다. 소설의 시간대가 여권이 크게 신장되지 못한 2차 대전 때여서 그랬을까.
도대체 할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14세 때 아버지뻘인 농부 닥과 결혼한 룰라메이 반스(할리의 본명) 일까 또는 클럽 파우더룸에서 남자로부터 50달러를 받는 플레이걸 할리일까. 아니면 늘 소속될 곳과 부를 찾아 헤매는 보통 여자의 상징일까. 할리의 매니저는 할리를 ‘진짜 가짜’라고 부른다. 할리의 모든 것이 가짜이지만 그것에 철저히 충실해 가짜가 진짜가 된 것이다. 엉성한 진짜보다 진짜 가짜가 정말 진짜라는 것을 할리는 아이처럼 뛰놀며 보여줘 우리는 할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의 여인상과 단절한 새 여인의 탄생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카포티는 이 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글과 달리 할리가 뉴욕을 떠나지 않고 돈 많은 유부녀(패트리셔 닐)의 기둥서방 출신으로 풋내기 작가인 애인 폴(조지 페파드)의 품에 안기는 할리웃식 해피엔딩 때문이었다. 카포티는 할리 역으로 마릴린 몬로를 원했다. 그리고 헵번도 자신과 너무 다른 할리 역을 맡기를 망설였는데 소설 속 할리는 10대 후반이었다(당시 헵번은 31세).
영화의 옥에 티는 할리의 아파트 위에 사는 일본인 사진작가 유니오시. 미키 루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뻐드렁니에 큰 안경을 끼고 심한 액센트를 쓰는데 아시안으로서 보기가 민망하다.
1837년에 개업한 티파니는 관광객들의 5th 애비뉴 최고 명소로 카포티의 책은 지금도 매년 3만부 정도 팔리고 있다.
헵번의 긴 담배물부리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오스카상을 받은 꿈꾸는 듯한 주제가 ‘문 리버’. ‘문 리버 와이더 댄 어 마일/아임 크로싱 유 인 스타일 섬데이/오 드림 메이커 유 하트 브레이커/웨어에버 유어 고인 아임 고인 유어 웨이’. 영화에서 헵번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앤디 윌리엄스의 노래가 좋다. 그런데 당신의 티파니는 어디에 있는가.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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