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정 난 암고양이가 “그르렁” 하면서 목구멍에서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노래 부르는 어사 키트(Eartha Kitt·사진)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1950년대 중반 서울의 길거리에서였다. 그 때 이 여자의 타령조의 노래 ‘우스카 다라’(Uska Dara)가 장안에서 대유행 했었다.
라디오 가게마다 “우스카 다라는 터키의 한 작은 마을인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키트가 흥얼대는 이 노래를 틀어놓고 길거리로 쏟아냈는데 사람들은 노래 제목을 ‘위스키 달라’라고 제멋대로 고쳐 따라들 불렀었다. 꼬마였던 난 그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별 희한한 노래가 다 있구나’하면서 그 이색적인 음성과 멜로디에 혹 했던 기억이 난다.
생전 자칭 ‘섹스 키튼’이라 불렀던 벨벳 감촉처럼 나긋나긋하고 따스하면서도 관능적인 음성을 지녔던 혼혈녀 가수 키트가 지난 크리스마스 날에 코네티컷에서 81세로 숨졌다. 댄서 출신으로 무대와 영화와 TV 배우로도 유명했지만 그 무엇보다 카바레 가수로 이름을 날려 ‘나이트클럽의 검은 여황제’라 불렸던 키트의 히트곡들로는 ‘세시봉’ ‘산타 베이비’ ‘에이프릴 인 포르투갈’ ‘레츠 두 잇’ ‘세 마그니피크’ 및 ‘아이 원트 투 비 이블’ 등이 있다.
키트의 목소리와 창법은 위스키에 절은 홍등가 여인의 그것처럼 헤픈 선정성을 지녔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아한데 에너지와 정열이 펄펄 끓어올라 듣고 있으면 몸이 가려워진다. 1950년대 초 키트가 캐서린 던햄 무용단원으로 파리에 갔을 때 그를 자기 연극 ‘파우스트’에 출연시킨 오손 웰즈는 키트를 “세상에서 가장 익사이팅한 여자”라고 찬양 한바 있다. 키트는 이를 계기로 파리에 눌러앉아 고급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불렀고 또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게 된다.
나는 키트가 노래하는 것을 지난 1995년 할리웃의 루즈벨트 호텔 내 클럽 시네그릴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별로 넓지 않은 클럽은 초만원을 이뤘는데 어깨부분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검은 얇은 드레스를 입은 키트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아임 스틸 히어’를 열창했다. 이 노래는 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데 당시 67세였던 키트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독백을 섞어가며 힘차고 거침없이 노래 불렀다.
키트는 노골적인 제스처와 언어로 무대 앞 남자들에게 은근짜를 놓아가며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특히 키트는 ‘우스카 다라’를 부를 때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도발적인 육체의 율동을 보여줘 청중들의 아우성에 가까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70가까운 나이에도 검은 암표범 같은 육감적이고 탄력성 있는 몸 안에 맹렬성과 힘을 지닌 키트는 쉴 새 없이 자극적 음성으로 영육을 모두 불태우듯 열창했다. 그 때 키트가 부른 ‘세시봉’과 ‘세프템버 송’ 및 ‘올드 패션드 걸’ 등의 멜로디와 그의 화폭을 가득 적시는 화려한 물감의 흐름과도 같았던 제스처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키트의 노래는 인생 찬미자의 고백과도 같아 감격스러웠는데 “나는 67세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의 당당함과 여유와 유머 그리고 사랑과 섹스 찬양에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었다. 그러나 키트는 무대에서와는 달리 실제로는 수줍은 외톨이였는데 이는 불우하게 자란 어린 시절 때문이라고 한다.
60년간 연예인 생활을 했던 키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목화농장에서 태어나 할렘에서 자랐다. 그는 브로드웨이를 거쳐 가수가 됐는데 수개 국어에 능통한 팔방미인으로 에미상을 두 번 탔고 토니와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키트는 냇 킹 코울과 공연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1958)를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에 나왔다. 비교적 최근작으로는 섹스에 굶주린 여자로 에디 머피와 공연한 ‘부머랭’(1992)과 디즈니 만화영화 ‘신세대 황제’(2000)에서 이즈마의 음성연기를 맡았었다. 키트의 TV역 중 유명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방영된 ‘배트맨’ 시리즈에서의 섹시한 캐트 우먼.
키트는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선 거침없이 말하는 여자였다. 1960년대 중반 백악관에서 열린 레이디 버드 존슨이 마련한 오찬에서 반베트남전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가 FBI와 CIA의 조사를 받고 그 뒤 4년간은 거의 해외에서 활동해야 했다.
키트가 술 취한 사람의 보조와도 같은 리듬으로 부르는 ‘산타 베이비’는 크리스마스 단골 곡이다. 크리스마스 날에 하늘에 올라간 키트는 아마도 지금쯤 거기서 이 노래를 부르며 붉은 코 산타에게 은근짜를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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