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게 런던서 흡혈귀가 쓴 편지가 날아왔다.
‘디어 H.J. 흡혈귀로부터 할러데이 카드를 받는다는 것은 매일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나의 뾰족한 엄니에 속지 마세요. 그 모든 것 아래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추운 겨울 런던 내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할러데이 카드를 쓰는!). 행복하고 건강한 할러데이를 기원합니다’
카드는 HBO의 새 시리즈 ‘트루 블러드’(True Blood·사진)에서 인간 수키와 사랑을 나누는 흡혈귀 빌 역의 스티븐 모이어가 보내온 것이다. 시상시즌에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원인 내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뜻이 내포된 글이다. 시리즈에서 빌은 자기가 사랑하는 수키의 피를 빨아 마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공교롭게도 지금 상영 중인 ‘여명’(Twilight)과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도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현재 빅히트를 하고 있는 ‘여명’은 고교생 흡혈귀 에드워드와 동급생 벨라의 정열적인 사랑이 주제로 여기서도 에드워드는 벨라의 피를 빨아 마시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은 소녀 흡혈귀와 왕따 당하는 소년의 풋사랑 얘기로 역시 흡혈귀는 허기에 시달리면서도 소년은 건드리지 않는다.
흡혈귀 영화는 독일의 F.W.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와 유니버설 작으로 벨라 루고시가 나온 ‘드라큘라’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인기 품목이다.
흡혈귀는 인간들이 인정하거나 포용하기를 꺼려하는 금지된 욕망과 사랑과 쾌락 그리고 공포를 서슴없이 행사하는 암흑의 왕자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칠흑과도 같은 욕망의 대체 행위자이다.
흡혈귀의 매력은 인간들이 좀처럼 모두 갖출 수 없는 것들로 차 있다. 그는 미남이요 로맨틱하며 위험스럽고 국외자이며 또 부유하고 초자연적 힘과 감각을 지녔으며 귀족적이요 불사의 존재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매력은 무엇보다 악마적 섹스어필이라고 하겠다.
이러니 여자들이 흡혈귀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인데 그래서 흡혈귀 영화에서 미녀들은 하나 같이 ‘죽어도 좋다’며 흡혈귀에게 자기 목을 내밀고 있다. 섹스와 죽음의 혼연일체이다. ‘여명’에서도 벨라는 에드워드에게 “죽어도 좋으니 나를 너와 같은 종류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다. 사랑이란 죽어서야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흡혈귀의 매력은 이렇게 에로틱하면서도 낭만파 시대의 구식 스타일의 로맨티시즘을 망토처럼 걸치고 다닌다는데 있는데 소설 속 흡혈귀의 모델이 영국의 로맨틱하고 정열적인 시인이었던 로드 바이론이라는 사실이 흥미 있다.
자료에 따르면 최초의 흡혈귀 소설 중 하나인 ‘뱀피르’는 바이론의 의사였던 존 폴리도리가 바이론을 모델로 쓴 것이다. 이어 소설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탄생시킨 브람 스토커는 폴리도리의 글에서 영향을 받았다.
현대에 들어 통상적인 사랑과 흡혈귀가 맺어진 것은 앤 라이스가 쓴 ‘흡혈귀 연대기’의 첫 작품 ‘흡혈귀와의 인터뷰’다. 이 소설은 1994년 탐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 졌다. 이 영화보다 더 로맨틱하고 멋있는 것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감독하고 게리 올드맨이 주연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다.
내가 처음 보고 며칠 간 밤잠을 설쳤던 드라큘라 영화는 중학생 때 중앙극장에서 본 영국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 빨간 실핏줄이 선명한 눈과 뾰족 엄니를 한 키가 큰 크리스토퍼 리가 어떻게나 무서웠던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영화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피처럼 끈적거리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드라큘라 영화로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진 것이 무대극이 원작인 ‘드라큘라’. 이 영화에는 프랭크 란젤라(오늘 개봉되는 ‘프로스트/닉슨에서 닉슨 역)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각기 흡혈귀와 그의 천적 닥터 밴 헬싱으로 나와 사투를 한다. 드라큘라 영화는 이밖에도 카트린 드뇌브가 레즈비언 드라큘라로 나오는 ‘기아’를 비롯해 드라큘라의 딸과 과부와 개 등 온갖 제목을 가진 영화들이 많다.
만약에 당신에게 보통 인간과 로맨틱한 흡혈귀 중 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고를 것인가.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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