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아침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WIP)의 홍보담당 부사장으로 있는 로라 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로라는 “미 대통령 선거일은 다가오는데 4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날까 봐 너무나 신경이 쓰인다”면서 “오바마가 당선돼야 할 텐데 나이 먹은 한인들은 보수적이어서 걱정스럽다”고 하소연을 했다.
로라는 이어 내게 “넌 누구를 찍을 거냐” 물어 “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고 말했더니 로라는 “그레이트” 하며 반가워했다. 로라는 “민주당이 이민자들의 권익옹호에는 늘 공화당보다 앞장서 왔다”면서 “오바마와 매케인이 너무나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어 불안해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로라의 4년 전의 악몽에 대한 우려는 얼마 전 기자회견서 만난 리처드 기어의 입에서도 나왔다. 그는 매케인의 인기도가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자신의 부통령후보로 선정한 뒤 상승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악몽이다”며 우려의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버락 오바마의 인기도가 다시 존 매케인을 앞지르면서 로라나 기어 모두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시가 얼마나 형편없는 대통령인가 하는 점은 영화 관계사업을 하는 나의 초보수파 유대인 친구 마이크 코벨도 인정할 정도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자기 차에 성조기를 꽂고 다녔던 사람이다.
지난 23일 그와 함께 저녁을 하면서 선거 얘기가 나왔다. 마이크는 내게 “넌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기에 “난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마이크에게 “너는 정말로 부시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부시가 8년간 실정을 했다고 해서 공화당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난 그가 부시의 잘못을 시인한 점에 대해 깜짝 놀랐다.
매케인은 부시의 아류다. 그리고 페일린은 매케인보다 더 보수적인 여자다. 악몽의 듀엣이라 부를 만하다. 그럼 과연 오바마가 이 악몽의 듀엣을 저지하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선거를 불과 1개월여 앞둔 지난 24일 발표된 워싱턴 포스트와 ABC 뉴스의 합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가 매케인을 52 대 43으로 앞지르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이 “내게는 꿈이 있다”고 말한 뒤 반세기만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국을 존경한다.
미국의 흑인 대통령은 현실보다 영화와 TV에서 먼저 나왔다. 스크린 최초의 대통령은 어린 꼬마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로 그는 1933년작 뮤지컬 코미디 ‘루퍼스 존스를 대통령으로’에서 불과 7세에 백악관의 주인이 됐었다.
비교적 최근 영화에서 흑인 대통령 역을 사실적이요 늠름하게 표현한 배우가 공상과학 영화 ‘디프 임팩트’(Deep Impact·1998)에서의 모간 프리맨이다. 영화 ‘절대 권력’에서 외도하다가 자기 정부를 죽인 백인 대통령 진 해크만에 비하면 프리맨은 위기에서 시민들이 의지하고 믿을 만한 확실한 대통령이었다.
코미디언 크리스 록도 오바마처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뛰었다. 그는 영화 ‘국가수반’(Head of State·2003)에서 워싱턴 D.C.의 시의원으로서 여차저차 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왔다. 이 영화의 DVD 부록에서 록은 “내 생애 흑인 대통령을 보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회의했다.
미 사회학자들이 팝문화 매체에 묘사된 흑인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는 것이 폭스TV의 액션 스릴러 시리즈 ‘24’에서 데니스 헤이스버트가 연기한 데이빗 팔머 대통령이다(사진). 그런데 팔머는 매케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문화 매체 속 대통령이다. 반면 오바마는 영화 ‘경쟁자’(The Contender·2000)의 백인 대통령(제프 브리지스)을 좋아한다. 사회학자들은 헤이스버트가 보여준 근엄하고 위풍당당한 대통령 모습이 은연중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는 길을 보다 쉽게 터놓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헤이스버트도 얼마 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역이 한 일과 내가 그것을 표현하고 또 각본가들이 팔머를 묘사한 방법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흑인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고 또 현실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눈을 뜨게 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 가지 기분이 찜찜한 것은 팔머가 시리즈 제5회 시즌에서 암살당한 사실. 오바마에 대한 암살 우려는 그가 후보경쟁에 뛰어들면서부터 쉬쉬하듯 얘기되어 왔다. 훌륭한 지도자들이었던 JFK, BFK 및 마틴 루터 킹등의 죽음이 연상이 돼 가슴이 섬뜩해진다. 갓 블레스 힘!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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