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오, 로베르토, 저는 키스를 어떻게 하는 줄 몰라요. 그렇지 않다면 전 당신에게 키스를 할 텐데요. 저는 늘 코는 어디로 가나하고 궁금해 해요.”(이 말에 로버트는 마리아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한다.)
마리아: “그것들이 방해가 되지 않네요. 그렇지요? 저는 늘 그것들이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마리아가 로버트에게 키스를 한다) “보세요, 나도 할 수 있어요.”
로버트: “마리아-”.
마리아: “오, 제가 잘못했나요?”(로버트는 잠시 기다린 뒤 그녀를 감싸 안고 정열적인 키스를 한다.)
샘 우드 감독의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1943)에서의 마리아와 로버트가 첫 키스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다(사진). 나는 중학생 때 서울 용산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머리를 짧게 깎은 잉그릿 버그만이 아이처럼 수줍어하면서 코타령을 하는 모습이 어찌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지 작은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라스트 신. 마리아와 빨치산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로버트를 못 떠나겠다고 울고 불며 몸부림치는 마리아를 달래는 로버트의 사나이다운 모습. 로버트는 마리아에게 “내가 당신이야.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라면서 자신에게서 안 떨어지겠다는 마리아를 쫓아버리다시피 보낸다. 이어 로버트가 쏘는 기관총 소리와 함께 화면을 덮는 초연 위로 커다란 종이 로버트의 죽음을 알리듯 울린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다시피 했는데 ‘과연 나라면 로버트처럼 저렇게 용감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했었다.
스페인 내전을 그린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삶과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이 글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기 목숨마저 버리는 한 남자의 용기와 희생에 관한 헤밍웨이적 신념의 표현이다. 로버트의 죽음은 분명 영웅적 행위이건만 그는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선한 싸움을 위해 싸우다 죽을 뿐이다.
드라마와 로맨스와 액션을 고루 갖춘 소설은 특히 로버트의 마리아에 대한 지고한 사랑을 부드럽게 묘사하고 있다. 로버트는 거의 자비한 심정으로 마리아를 사랑한다. 모두 가슴에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은 사랑으로 비로소 하나가 되고 로버트는 죽음으로써 마리아 안에서 자신과 자기 이념을 생존시킨다. 로버트는 마리아에게 “당신이 사는 한 나도 사는 것이지”라며 죽어서 사는 역설을 힘주어 말한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발발과 함께 종군기자로 참전한 헤밍웨이는 쓰는 것에 만족 못해 파시스트 프랑코에 저항하는 공화군과 함께 전투를 했다. 이 소설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제목은 영국 시인 존 돈의 시 ‘어떤 사람도 섬이 아니다’에서 따왔다. ‘어느 사람의 죽음이라도 나를 작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와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알기 위해 보내지 말라/ 그것은 당신을 위하여 울린다.’
현실과 소설 속 파쇼 세력에 의한 공화군의 패배는 당시 전 세계가 처한 위기의 일부분이었다는 점에서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극우파와 독재자들의 전횡에 죽어나는 것은 민권과 자유와 정의다.
소설은 1937년 겨울 프랑코군에 저항하는 빨치산들이 숨어 있는 산을 무대로 70여시간에 걸친 얘기다. 미국인 의용군인 로버트 조단은 다리 폭파를 위해 빨치산과 합류하는데 이 다리는 이념가인 로버트의 대의 실천의 실물대상 구실을 하면서 작품의 초점이 된다. 로버트와 마리아 외에 빨치산 리더인 파블로(아킴 타미로프 분)와 그의 아내 필라(영화에서 필라 역의 카티나 팍시누가 오스카 조연상 수상) 등이 중심 인물이다. 헤밍웨이는 로버트의 실물 모델로 게리 쿠퍼를 생각하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마리아 역으로 잉그릿 버그만을 자신이 직접 뽑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오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의 민주·공화 양당 후보자인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모두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이 소설을 선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념의 실천을 위해 자기 생명마저 희생하는 영웅적 행위의 주체인 로버트는 남성이라면 동경함직한 이상형이다. 그들은 과연 로버트처럼 선한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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