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작위적이요 연극 같고 또 무겁기까지 한 오페라에 생명감 있는 활기와 관객이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감을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가 LA 오페라가 자주 사용하는 대중예술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 의한 오페라 연출이다. 오페라적인 것의 영화적 변용이라 할 수 있겠다.
할리웃을 안고 있는 LA 오페라는 과거 허브 로스, 게리 마샬, 맥시밀리언 셸, 줄리 테이모 및 존 슐레신저 등 명영화감독들에게 작품연출을 맡겨 대부분 성공했다. 영화감독의 오페라 연출은 플라시도 도밍고가 LA 오페라의 총감독으로 부임한 후로 잦은데 도밍고는 지금 배우 겸 감독인 존 말코비치와 팀 로빈스에게 오페라 연출을 맡길 것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지난 6일 개막한 LA 오페라의 새 시즌 작품인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Il Trittico·26일까지)도 유명한 2명의 영화감독 윌리엄 프리드킨과 우디 알렌이 연출했다. 푸치니 출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 시즌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오페라는 단막 3편을 묶은 것으로 제목은 ‘세 벌 한 폭’을 뜻한다. 이와 함께 현재 LA 오페라가 공연중인 ‘파리’(The Fly) 역시 영화감독 데이빗 크로넌버그가 연출을 맡고 있다. 이 오페라는 크로넌버그가 1986년에 연출한 동명의 공상과학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음악은 ‘반지의 제왕’으로 오스카상을 탄 하워드 쇼가 작곡했다. 미국 초연인데 유감스럽게도 비평가들의 악평을 받았다.
개막일 LA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 입장한 청중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알렌이 연출한 ‘일 트리티코’의 마지막 편 ‘지아니 스키키’(Gianni Schicchi)에 쏠렸다. 프리드킨은 과거에도 오페라를 연출했지만 알렌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선병질성의 코미디언이 과연 오페라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하고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알렌은 지난 달 3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은 자신의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홍보 기자회견 때 자신의 오페라 연출에 관해 언급하면서 “관객이 재미없다며 ‘부’하고 야유를 보낼까 봐 염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아직까지 오페라 연출을 해 본적이 없지만 도밍고가 과거 수년간 자신에게 오페라 연출을 종용해온 데다가 1시간도 채 안 되는 짤막한 푸치니의 작품이어서 연출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알렌의 염려는 공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지아니 스키키’(사진)는 시종일관 요절복통하게 재미있는 난장판 소극이었다. 이 오페라는 부패와 탐욕에 관한 신랄한 풍자인데 지아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라우라 타투레스쿠)가 부르는 소프라노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플로렌스의 세력 있는 집의 가장 부오소 도나티의 유산을 놓고 일가친척이 서로 자기들이 더 갖겠다고 난리법석을 떨다가 일종의 협잡꾼인 스키키(토마스 알렌)에게 당하는 얘기다. 알렌의 장난기가 역연한 연출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체를 놓고 일가친척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라우레타의 애인 리누치오(사이미르 피르구)가 라우레타의 스커트를 들치고 허옇게 드러난 허벅지를 마구 주무르는가 하면 남자가 여자의 유방을 만지는 등 음탕하기 짝이 없다. 무대 뒤에서 알렌이 킬킬거리며 웃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이 오페라는 단테의 ‘지옥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알렌이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부리는 솜씨가 뛰어났다. 빨래가 사방에 걸린 방안에서 자아내는 욕심 많은 소시민들의 소극이 마치 피에트로 제르미의 영화 ‘이탈리아식 이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토마스 알렌과 타투레스쿠 등 출연진들의 노래가 좋았는데 ‘일 트리코’ 3부작의 모든 가수들이 하나같이 노래를 잘 불렀다. 연출도 훌륭했는데 무엇보다 보기 좋은 것이 산토 로콰스토의 사실적인 세트였다.
‘일 트리티코’의 첫 번째 작품은 극적이요 어두운 삼각관계를 다룬 ‘외투’(Il Tabarro). 센강의 거룻배 선장(마크 델라반)과 그의 아내(아냐 캄프) 그리고 아내의 정부(살바토레 리치트라)의 치정극인데 세 가수가 모두 정열적이요 극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외투’와 함께 프리드킨이 역시 연출한 두 번째 작품 ‘안젤리카 수녀’(Suor Angelica)는 죽음과 종교적 구원을 그린 서정적이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작품. 안젤리카 (손드라 라다바노프스키)가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자살하기 위해 꽃과 식물에서 독을 짜내면서 부르는 아리아는 가슴을 찢는 듯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완벽한 세 폭 한 벌로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그런데 프리드킨은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신경 과민한 알렌은 무대 뒤에서 안 나왔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