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이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그 열기도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신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도 금메달을 여러 개 따면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올림픽 메달 집계를 보면 미국은 금·은·동메달을 모두 합한 수로 순위를 매기는 반면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은 금메달 수로 매긴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메달 집계라는 것이 없는데 참가국들이 저마다 집계를 하는 바람에 이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비공식적으로 금메달 위주의 순위 매김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운동경기 등 모든 경쟁에선 1등을 하는 것이 지상 목표이긴 하나 너무 금메달에만 집착하다 보니 은과 동메달은 완전히 금메달의 들러리처럼 보여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올림픽은 고된 훈련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 등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물론 대부분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이 중 가장 뛰어난 것 가운데 하나가 1981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국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다. 반젤리스의 음악이 멋있는 이 영화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두 육상선수의 실화로 승리의 뜻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이밖에 1980년 레익 플래시드의 동계올림픽에서 강호 소련과 싸워 우승한 미 아이스하키팀의 박진한 드라마 ‘기적’(Miracle)과 생전 눈이라곤 본적이 없는 자메이카 밥슬레이드팀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출전담을 그린 코미디 ‘쿨 러닝스’(Cool Runnings) 및 오리건대학 육상선수로 1972년 뮨헨 올림픽에 출전한 스티브 프리폰테인(24세로 교통사고로 요절)의 얘기인 ‘한계를 너머’(Without Limits) 등도 좋은 올림픽 영화들.
그러나 최고 걸작은 1930년 베를린 올림픽을 찍은 흑백 기록영화 ‘올림피아’(Olympia·220분·사진)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배우 출신의 미녀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 동작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육체와 영육을 모두 불사르는 경쟁 그리고 이상형으로서의 선수들과 그들의 환희와 좌절을 담은 불후의 걸작이다.
이 영화는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막 득세한 나치스를 세계에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올림피아’는 그래서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그런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보면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처음 그리스 신전의 열주들을 다중노출로 보여주면서 이어 주자에서 주자로 넘겨지는 성화를 큰 걸음으로 길게 따라 가다가 마침내 거대한 베를린 스테디엄으로 따라 들어간다.
특히 이 영화는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일본인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이 상세히 기록됐기 때문이다. 머리를 짧게 깎은 약간 깡마르나 강인한 얼굴과 몸을 지닌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는 모습을 보노라면 비감해진다. 장내 아나운서의 “일본의 손이 1등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과 이어 카메라가 일본 국가 연주 속에 게양되는 일장기와 월계관을 쓴 어두운 표정의 손기정의 얼굴을 교차 묘사하면서 이를 보는 한국인인 나의 가슴 속에 비린내를 풍기게 만든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런 콧수염을 한 히틀러가 관중석에 괴벨스와 함께 나란히 앉아 독일 선수의 승패에 기뻐했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리펜슈탈이 당시 유대인 핍박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던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노출시키려했던 것 같다. ‘올림피아’는 또 금메달을 무려 4개나 따면서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납작하게 만든 미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의 뛰는 모습도 상세히 보여준다.
리펜슈탈은 다이빙, 높이뛰기, 봉고도, 투원반 및 승마경기 등에 참가한 선수들의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표정과 그들의 경기 장면을 슬로모션 등의 촬영으로 시적으로 잡아내고 있어 영화를 보면서 ‘아름답다’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 영화가 우수한 까닭은 리펜슈탈이 단순히 경기 모습과 경기자들의 외적 동작이나 표정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기와 경기자들의 내적 감정과 정신까지를 탁월하게 추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챔피언들이 경쟁하면서 쏟아내는 에너지 속의 육체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흥분되고 극적이며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또 다른 좋은 올림픽 기록영화로는 곤 이치가와 감독의 ‘도쿄 올림피아드’(Tokyo Olympiad·1966)와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한 이스라엘 선수 납치사건을 다룬 ‘9월의 하루’(One Day in September)가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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