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부시가 대통령으로 있긴 하지만 미국의 좋은 점들 중의 하나가 대중문화는 물론이요 소위 고급예술인 클래시컬 음악과 오페라와 연극 및 미술전시 등을 시민들이 비교적 저렴한 값에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앤젤리노들은 여름 음악의 풍성한 잔치를 이 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장소인 할리웃보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축복으로 여겨도 좋은 것이다. 보울에서는 7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월요일을 뺀 주 엿새 동안 재즈와 스윙과 팝 그리고 클래시컬 음악과 오페라 등을 요일별로 나누어 공연하는데 그야말로 음악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무대에 오른다.
올 시즌 경우 윈턴 마살리스, 다이애나 로스, 다나 서머 및 브라이언 윌슨과 같은 재즈와 팝스타와 함께 요-요 마, 조슈아 벨, 장-이브 티보데 및 존 윌리엄스와 에도 드 바르트 등 클래시컬 음악의 거목들이 보울을 찾아온다. 한국의 자랑거리인 새라 장은 오는 9월2일 시벨리우스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클래시컬 음악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연주되는데 물론 코피 나는 맨 뒷좌석이지만 제일 싼 입장료는 1달러다. 비행기 소리와 술병 구르는 소리가 후렴처럼 들리는 보울은 겨울 시즌과 달리 클래시컬 음악을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장소다. 나도 과거 앉아본 적이 있지만 음향은 증폭되고 연주자들의 모습은 4개의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뒤쪽에서도 얼마든지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 보울에 못 간다는 말은 억지다.
지난 17일 밤의 할리웃보울은 완전히 중국인들의 잔치였다. LA필을 연주한 지휘자에서부터 연주자와 연주곡이 중국인들과 중국 작품 일색으로 이 날의 스타는 클래시컬 음악계의 수퍼스타 랑 랑(26)이었다. 평일인 목요일인데 입장객 수가 1만4,000명으로 집계됐으니 가히 이 더벅머리 청년 피아니스트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경제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요즘 클래시컬 음악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과거 일본과 한국이 그랬듯이 중국인 부모들은 지금 자기 자녀들을 제2의 랑 랑을 만들어보겠다고 너도 나도 피아노 연습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 날 지휘는 차이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롱 유가 했는데 첫 곡은 후아 얀준의 ‘에르콴샘에 투영된 달’. 당초 중국 고유 현악기인 에르후 연주용으로 작곡된 것을 현악곡으로 편곡했는데 샘에 비치는 달그림자의 그윽한 정취를 그대로 퍼 담듯 시적이요 몽환적으로 아름답다.
이어 앙리가 감독한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탄 둔이 이 음악을 근거로 작곡한 첼로를 위한 ‘와호 협주곡’이 연주됐다. 곡은 총 6악장인데 이 날은 4악장만 발췌 연주됐다.
요-요마가 첼로를 연주한 영화음악은 여성적인 현의 체취와 남성적인 북의 맥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멜로디의 걸작이었다. 이 날 첼로 연주는 LA 필의 차수석 첼리스트로 대만 태생인 벤 홍이 했는데 대담무쌍하면서도 광채가 나는 연주였다. 특히 그가 맨손과 손가락만으로 현을 두드리고 훑어 내리면서 들려주는 장식음들이 일품이었다.
클라이맥스를 꾸미는 숨 가쁘게 달리는 북의 가락을 듣자니 영화에서 주윤발과 미셸 여와 지이 장(그 때만 해도 장지이였다)이 담벽을 곡예하듯 오르고 지붕과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칼과 쿵푸 솜씨 자랑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피날레는 랑 랑이 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제1번. 이 곡은 내 ‘센티멘탈 페이보리트’로 들을 때마다 가슴앓이를 할 정도로 뜨거운 감정에 빠지곤 한다.
나는 수년 전에도 랑 랑의 연주로 이 곡을 들은 바 있는데 그 때도 그랬지만 랑 랑의 테크닉은 듣는 사람을 무아지경으로 몰아갈 만한 것이다. 게다가 랑 랑은 음악과 자기 연주에 도취해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듯 했는데 늘 그렇듯이 그의 연주는 연주라기보다 배우가 하는 연기 같았다.
이런 야단스런 제스처 때문에 그는 ‘중국의 리베라치’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또 비평가들로부터 서커스를 한다는 혹평까지 듣기도 했다. 때로 그의 연기같은 연주가 음악감상을 다소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클래시컬 음악 아마추어 애호가인 나로서는 그의 감정적이요 화려한 연주를 듣는 기쁨이 크다. 청중들의 아우성치는 박수갈채에 랑 랑은 쇼팽을 앙코르로 보답했다.
한편 랑 랑의 자서전 ‘1천마일의 여행’(Journey of a Thousand Miles)이 최근 Spiegel & Grau에 의해 출간됐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