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아테네는 뜨거웠다. 마치 열 받은 신들의 왕 제우스가 내열을 도시 전체에 토해 내듯이 화끈했다. 며칠간 머무는 동안 온도계는 연일 섭씨 40도를 기록했다.
오는 18일 개봉되는 뮤지컬 ‘마마 미아!’(Mamma Mia!)의 프레스 정킷 참석차 지난 달 27일 아테네공항에 내렸다. 첫 숙소인 아테네 근교의 호텔로 가는 버스에서 내다 보니 길가 집들이 무척 초라했다.
숙소인 디바니 아폴론 호텔은 마침 국제사회주의자 총회가 열려 인파로 벅적댔다.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에게해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새파랗다. 식당에 내려가 웨이터에게 전통 그리스 술을 부탁했더니 우조(Ouzo)를 권한다. 포도를 짜 향료식물과 딸기류를 섞어 만든것으로 얼음에 타서 마시는데 달콤 하면서도 무척 강했다. 취기가 고단한 여객의 뼈속으로 스며들었다. 해변을 산책하는데 저녁 9시가 됐는데도 훤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영화에 나온 메릴 스트립과 피어스 브로스난 등과 ‘댄싱 퀸’등 아바의 노래를 작곡 작사한 베니와 뵤른등의 인터뷰 장소인 그랜드리조트 라고니스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굽이진 작은 만들에서 툭하면 싸움질을 하던 희랍 도시국가들의 전함을 상상하면서 나는 혼자서 기원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기원전 13세기에 저 곳 어딘가에서 희랍연합전함군단이 패리스와 사랑의 도주를 한 헬렌을 회수하기 위해 트로이 공격항해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무려 10명을 인터뷰 했다. 나중에는 배우 얼굴조차 보기가 싫다. 저녁은 바닷가의 포사이던 애브뉴에 있는 1889년에 문을 연 생선요리전문집에서 했는데 웨이터들은 “댕큐”에 “노싱”이라고 답한다.
이튿날 우리는 숙소를 아테네 도심의 그랜드 브르타뉴로 옮겼다. 호텔현관 앞 그늘에 큰 백구가 늘어져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아테네 거리에는 유난히 많은 주인 없는 개떼들이 횡행했다.
짐을 풀고 시 북쪽 구 시가에 있는 마켓엘 찾아갔다. 걷는데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한다. 가는 길에 왼쪽을 보니 올림피안 제우스사원의 10여개의 돌 기둥이 보인다. 시내 곳곳에 돌 기둥과 유적이 널려 있어 이 도시가 기원전 신화의 땅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로같은 골목마다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찬 마켓에서 기념품 몇점을 샀는데 바가지를 쓴 것 같다. 이 곳의 집들은 19세기에 지었는데 곧 주저앉을 것 같았다.
저녁에는 일행중 몇명과 함께 마켓주변의 옥외카페에서 다국적 팬들과 함께 유로축구 결승전을 봤다. 관광철 유럽에는 날치기 소매치기가 많다더니 나는 이 날 그런 경험을 했다. 스페인이 이긴 뒤 자정께 혼자 호텔을 향해 걸어 가는데 어떤 녀석이 내 길을 막고 지갑속의 경찰배지를 보여 주면서 “경찰인데 패스포트 좀 보자”고 한다. 난 “노 웨이” 하면서 “보려면 호텔까지 날 따라와”라고 말한 뒤 빠른 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7월 1일 우리는 관광안내원 조지아의 인도로 시 북쪽의 높이 160m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찾아 갔다. 아래서 올려다 본 파르테논신전의 우아한 자태 속에서 신들의 만유와 대화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발상지로 여기서 두 신들인 포사이던과 아테나가 경쟁을 했던 곳이라고 조지아가 설명한다. 꼭대기로 가는 중에 있는 헤로디온 옥외극장은 매년 헬레닉축제가 열리는 곳. 마리아 칼라스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노래했고 누레예프와 바리시니코프가 춤을 췄다. 입장시 하이힐과 검이 금지 품목이다.
포사이던과 아테나가 싸웠던 곳에 두 신에게 바치는 신전 에렉테이온이 서 있는데 이 신전을 압도하고 언덕 꼭대기에 우뚝 선 것이 아테나를 위한 대리석 신전 파르테논(사진). 지금 이 신전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복구작업 중이다.
신들이 놀던 아크로폴리스를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인간들이 떼를 지어 어지럽히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제우스 신전 건너편에 있는 배우이자 그리스문화상을 지낸 멜리나 메르쿨리 흉상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마간산식으로 시내를 둘러 봤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 뒤 국립고적박물관을 방문했다. 금과 청동과 대리석유물들이 기원전 희랍의 영광을 뽐내고 있었다. 이 문명이 어쩌다 몰락했을까 하는 의아함이 남았다. 떠나오기 전 날 밤 호텔 옥상식당에서 건너다 보니 파르테논이 엷은 황금빛 인공조명 속에 기원 전처럼 아득히 서 있다. 신들도 잠이 든 듯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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