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은 쿨한 영국 스파이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낸 작가 이안 플레밍(사진)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 런던의 제국전쟁 박물관에서는 본드와 플레밍의 상관관계를 다룬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또 이들에 관한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매력적이요 세련됐고 지적이면서 아울러 탄탄한 체구를 지닌 냉정한 킬러인 제임스 본드는 플레밍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2차 대전 때 영국 해군정보부 요원으로 활약한 플레밍은 본드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냈다. 플레밍은 생전 술과 담배(하루 80개비를 태웠다)와 여자를 좋아했는데 본드도 이 세 가지를 무척 즐기는 스파이다. 상류사회 부잣집 아들이었던 플레밍은 명문 이튼과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에서 모두 퇴학을 당했는데 그 까닭은 여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플레밍이 1964년 56세로 일찍 죽은 것도 담배와 알콜의 영향이 컸다.
플레밍은 외무고시에 떨어진 뒤 모스크바 주재 로이터통신 기자로 일했는데 그 뒤 주식중개인으로 큰돈을 벌었다. 플레밍은 1938년 다시 저널리스트가 됐으나 이것은 스파이 신분을 위장하는 한 수단이었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해군의 첩보부장 부관으로 발탁된 플레밍은 지휘관의 자리에까지 올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공대를 관리했다. 플레밍은 재직 때 귀신같은 스파이 작전을 고안해 냈는데 당시 일선 지휘관이었던 멋쟁이인 패트릭 달젤-조브로부터 제임스 본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플레밍의 첫 본드소설은 2006년 제6대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한 영화 ‘카지노 로열’의 원전인 동명소설. 플레밍은 총 12편의 소설과 2편의 단편소설 모음집 등 전체 본드소설을 자메이카의 자신의 별장 골든아이(1995년에 나온 본드영화 제목)에서 썼다. 하루 4시간 레밍턴 타자기로 2,000자를 썼다. 본드소설은 케네디 대통령이 애독했는데 그것이 미국에서 이 소설이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된다.
제임스 본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로 친근해졌다. 션 코너리가 나온 시리즈 제1편 ‘닥터 노’에서부터 역시 크레이그 주연으로 오는 11월7일에 개봉될 ‘위로의 양’(Quantum of Solace)에 이르기까지 본드 역을 맡은 배우는 모두 6명. 역대 본드 중 가장 멋있는 자가 코너리인데 ‘카지노 로열’로 본드로 데뷔한 크레이그가 코너리의 근사치로 칭찬을 받았다.
본드는 멋쟁이에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고 수많은 팔등신 미녀들과 사랑을 즐기면서 적을 무찔러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지만 사실 그는 잔인한 살인자요 쇼비니스트 돼지이며 또 자기 시대가 지난 공룡과도 같은 인물이다.
소설 속 본드는 젠틀맨이라기보다 사납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그리고 그는 여자를 1회용 클리넥스처럼 여기는 남자다. 그런데 본드는 원래부터 그런 남자는 아니었다. ‘카지노 로열’에서 이중첩자인 자기 애인 베스퍼가 죽은 뒤 본드는 배신감과 지우지 못할 상처에 시달리면서 여성 혐오자가 됐던 것 같다.
또 본드는 제2차 대전 후 옛 영광과 힘을 잃고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던 대영제국의 과거의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여왕처럼 구시대의 화석과 같은 존재다. 본드의 상관으로 여자인 M도 “너 같은 건 공룡에 지나지 않아”라고 질타를 했다.
본드영화의 매력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것이 본드의 맞수인 악한. 이들은 본드 못지않게 뚜렷한 개성과 지능과 세련미를 갖췄으며 또 냉정하고 사악하다. 닥터 노, 골드핑거, 블로펠드 같은 악한들이 없었더라면 본드는 한량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악한 못지않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쾌락주의자 본드의 여자들. ‘본드 걸’들은 하나같이 미끈미끈한 육체파들인데 역대 ‘본드 걸’로서 배우로 성공한 여자가 거의 없다. 이를 ‘본드 걸 징크스’라고 일컫는다.
플레밍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세바스찬 폴크스가 쓴 새 본드소설 ‘데블 메이 케어’(Devil May Care)가 나왔다. 플레밍 유족의 허락 하에 집필됐는데 본드가 1960년대 서방세계를 헤로인으로 수장시키려는 동구라파 측 음모를 분쇄한다는 내용. LA타임스 서평은 ‘무난한 글로 플레밍의 소설이 진짜 칵테일이라면 이것은 신 사과 마티니’라고 평했다.
한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 ‘플레밍’을 제작하고 주연도 할 예정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영화는 플레밍의 로이터통신 기자 시절과 해군 정보부 지휘관 시절을 다루게 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