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첫 주말 영화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안 왕자’와 ‘섹스와 도시’(30일 개봉) 시사회및 기자회견차 맨해턴엘 다녀왔다. 토요일(3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 방에 배달된 뉴욕타임스를 펼치니 메트로 섹션에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칵테일 테라스에서 지난 14년간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불러온 Ms. 대릴 셔먼(사진)이 일요일자로 테라스를 떠난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기사는 셔먼이 치는 피아노가 왕년의 명 팝송 작곡가로 이 호텔서 20여년을 산 코울 포터의 것이라면서 셔먼의 퇴장과 함께 피아노도 테라스를 떠난다고 썼다. 포터는 1920~50년대 ‘나잇 앤 데이’‘인 더 스틸 오브 더 나잇’‘비긴 더 비긴’‘아이브 갓 유 언더 마이 스킨’‘아이 러브 패리스’ 및 ‘트루 러브’(영화 ‘상류사회’의 주제가)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작곡했는데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가 ‘나잇 앤 데이’다. 기사는 이어 셔먼은 호텔의 새 주인에 의해 경제적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포터의 피아노를 치면서 포터의 노래를 부르는 셔먼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토요일 오후 숙소인 에섹스 호텔을 나섰다. 가다가 숙소서 동쪽으로 몇 블럭 떨어져 있는 플라자 호텔이 그간 콘도+호텔 개축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기에 들어가 봤다. 호텔 종업원에게 호텔의 오크 바(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케리 그랜트가 대낮 칵테일을 하다가 공산당 스파이들에게 납치된 곳)는 언제 다시 여느냐고 물었더니 오는 초가을에나 연다고 대답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정문을 열고 메인 로비에 있는 칵테일 테라스에 오르니 테이블들은 이미 기사를 읽고 온 손님들로 가득 찼다. 나는 셔먼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기념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50대로 추정되는 셔먼은 활기차고 장난기가 있는 우아한 모습의 숙녀였는데 “직장을 잃고 나서야 유명 인사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그녀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갈색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처럼 이렇게 앉아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했을 포터의 모습을 그려봤다. 화려한 장식이 있는 중간급 규모의 피아노는 1907년에 제조돼 1945년 호텔측에 의해 호텔 거주자인 포터에게 주어졌으며 1964년 포터가 73세로 사망한 후 로비로 옮겨졌다. 금방 부서질 것같은 골동품이었다. 피아노 악보대에는 ‘미국 뮤지컬들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이 이 스타인웨이 위에서 작곡되었다’고 적힌 금속패가 놓여 있었다.
다시 피아노로 돌아온 셔먼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 설명과 함께 ‘나잇 앤 데이’를 불렀다. 난 앉을 자리가 없어 그녀의 뒤편 계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경청했다.
“나잇 앤 데이 유 아 더 원/온리 유 비니스 더 문 오어 언더 더 선/웨더 니어 투 미 오어 파 이츠 노 매터 달링/웨어 유 아/ 아이 싱크 오브 유/데이 앤 나잇, 나잇 앤 데이”. 아름답고 풍성한 음성이었다. 호텔서 듣는 노래여서 그런지 유난히 로맨틱했다.
‘인 더 스틸 오브 더 나잇’ 등 포터의 노래를 몇 곡 더 듣고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셔먼의 CD를 20달러를 주고 산 뒤 그녀와 악수를 나누며 “행운을 빈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튿날은 전 날과 달리 따갑도록 청명한 날씨였다. 그동안 여러 차례 벼르던 다코타 아파트를 찾아 이번엔 숙소서 나와 서쪽을 향해 걸어갔다. 센트럴 팍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가는데 공원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성가신 햇볕과 군중이 여객인 날 피로케 만들었다.
센트럴 팍 웨스트와 72가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는 지난 1884년에 세워진 한 블럭을 통째로 차지한 초대형 최고급 아파트다. 지난 1980년 12월8일 밤 녹음을 마치고 아내 요코 오노와 함께 자기 집인 이 아파트로 돌아오던 존 레논이 건물 입구에서 마크 데이빗 채프만의 총에 맞아 죽어 유명(오명이라고 해야 더 옳겠다)해진 아파트다.
때가 묻은 고색창연한 모습이 마치 유령의 집을 연상케 했다. 채프만처럼 맞은편서 아파트를 카메라에 담은 뒤 길을 건너 건물 앞에 서서 돔으로 된 입구를 들여다보니 채프만이 쏜 총성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카네기와 레너드 번스타인이 살았던 이 아파트는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하고 미아 패로가 주연한 현대판 악마 숭배자들의 스릴러 ‘로즈메리의 아기’(68)에 나와 유명해지기도 했다. 영화 일로 뉴욕에 들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이 이방인 감이다. 난 어느 새 앤젤리노가 된 것 같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