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클래식 음악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첫 4음인 ‘타 타 타 타’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C단조)은 베토벤의 인간적 음악적 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베토벤은 이 4음에 관해 “운명이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는데 그의 평생은 이 교향곡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나오는 이 4음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방문한 운명과의 정면 대결이었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과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운명과 씨름할 것이다. 그것은 나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 삶을 일천 번 산다는 것은 아름답구나”며 운명을 거부했다.
‘운명’ 교향곡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것의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이 음악적으로 ‘다사다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이 음악을 통해 우리는 베토벤의 기구하나 승전보 같은 인간적 삶을 시공을 초월해 영혼으로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베토벤의 예술의 제1 조건은 영혼과 느낌과 직접적이요 근접한 삶이었고 그의 음악은 무엇보다 자유에의 억제 못할 충동의 소산이었다. 과거 통속적 교향곡의 형태를 무시한 ‘운명’을 들으면 베토벤의 이런 조건과 충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운명’을 듣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스릴러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전율감이다. 이런 두려울 정도의 전율감은 베를리오즈의 스승 장-프랑솨 르쉬에르가 이 곡을 처음 듣고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날 나가게 해줘. 난 공기를 좀 들이쉬어야겠어. 굉장해. 훌륭해. 나는 너무나 감동되고 혼란스러워서 박스에서 나오면서 모자를 쓰려고 했으나 내 머리를 찾을 수가 없었어.” 그는 이어 “어쨌든 저런 음악은 작곡되어서는 안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몇 차례 연주회장에서 이 곡을 들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아슬아슬한 불안감이다. 아마도 쾌감이 도를 넘을 때 갖는 불안감인 것 같다.
지난 7일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브 런던(사진)의 연주로 들은 ‘운명’은 내게 또 한 번의 새로운 경험을 인식케 했다. 지난 1980~90년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던 도흐나니(78)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바톤을 현 LA필의 상임지휘자인 에사 - 페카 살로넨에게 넘겨준다. 그래서 필하모니아의 이번 LA 순회연주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필하모니아는 2차 대전 직후 창설됐지만 오토 클렘페러와 푸르트벵글러 등 세계 굴지의 지휘자들에 의해 소리를 닦은 삼림과도 같이 풍성한 음량을 지닌 악단이다. 이날 레퍼터리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슈만의 교향곡 ‘봄’에 이어 ‘운명’으로 꾸며졌다.
백발의 중후한 체구를 지닌 철학자와도 같은 모습의 도흐나니가 해석한 ‘운명’은 지극히 신중하면서도 깊었다. 공격적인 이 음악의 추진력을 한 발 물러서서 제어하며 진정시키는 아량을 보여줬다. 그의 오랜 경륜을 인식할 수 있었는데 소리들이 마치 오랜 가구들에서 발산되는 유구한 시간성과 윤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운명’은 똘똘 뭉친 실타래 공이 장애물과 충돌해 되튀기 듯 하는 속도감과 박력을 지닌 것도 있지만 도흐나니의 ‘운명’은 묵직하고 풍요로웠다. 그래서 음악의 격한 추진력과 긴장감이 더 큰 무게로 느껴졌다.
‘운명’의 스릴러 감각은 제4악장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 다채로운 멜로디와 함께 리듬을 감았다 풀었다 또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긴장감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스릴러 작가의 수법을 쓰고 있다. 소리들이 허리케인의 맹렬성과 심연의 소용돌이처럼 질서정연한 분탕질을 치는데 끝나는가 하면 다시 이어지면서 끝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개입하게 만든다.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볼 때 느끼는 짜릿짜릿한 흥분감이다.
베토벤의 모토는 솔직과 정직이었다. 또 그는 직선적인 사람이었는데 ‘운명’은 이런 베토벤의 성질이 그대로 나타난 음악 같다. 베토벤은 운명에 항거하면서도 “그 것의 선고를 수용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운명과 좋은 싸움을 할 때까지 하다가 끝에 가서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말인데 ‘운명’ 제4악장의 코다에서 그의 이런 결단이 느껴진다. 그런데 베토벤 자신은 ‘운명’보다 ‘에로이카’ 교향곡을 더 좋아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