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교회를 나가는 나는 종종 이렇게 자문하곤 한다. 인간은 증명이 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신학대원을 나온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은 ‘믿음은 어떤 의제나 무언가를 보상 받을 수 있다는 구실이나 또 선행 같은 것 없이 신 앞에 나오는 마음의 빈 손’이라고 답해 왔다. 그는 이어 ‘신앙인들이나 비신앙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바닥에 깔린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들의 글을 보자 내가 옛날에 잠깐 다닌 제수잇계 대학 시절이 뇌리에 떠올랐다. 난 당시 가톨릭 신자가 되어 보려고 본명까지 지어놓고 신부에게서 교리공부를 배웠다. 어느 날 신부가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신을 믿기를 주저하는 줄 아는가”라고 묻더니 “그것은 믿음이 죽음처럼 우리에겐 너무도 불가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좀처럼 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 C가 빌려준 소설 ‘순교자’(The Martyred)를 읽고 나는 다시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6.25 때 18세로 입대, 4년간 복무한 재미동포 작가 김은국(리처드 E. 김)이 써 1964년에 출판된 이 책은 신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복음서와도 같다. 나는 책보다 유현목 감독이 1965년에 만든 영화(사진)를 먼저 봤는데 작품의 주인공 신 목사 역의 김진규가 심오한 연기를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6.25 때 얘기인 이 책이 열병과도 같은 감동을 주는 것은 신 목사가 자신의 회의를 십자가처럼 지고 맹목적으로 신을 요구하는 신도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욥과도 같은 시련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신과 내세를 믿지 않는 신 목사가 거짓 증언을 해서라도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신도들에게 믿음을 제공하면서 원치 않는 순교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신의 섭리라고 하겠다.
참된 신을 찾는 피눈물 나는 간구요 호소인 이 책은 1.4후퇴 직전의 평양이 무대다. 유엔군에 밀려 평양에서 후퇴하기 전에 북한군이 14명의 목사를 체포해 처형하는데 2명이 살아남는다. 글은 국군 정보부 소속 이 대위가 어떻게 해서 신 목사와 젊은 한 목사가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지를 캐내가는 과정을 일종의 수사소설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는 집요하게 과연 참된 종교와 믿음 그리고 신과 진실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간단명료하고 힘 있는 문체로 전쟁의 폭력 속에 시달리는 인간 영혼들의 충돌을 살벌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은국의 글은 마치 고난 받는 수도자의 고행과도 같아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다가도 끝에 가서 각성의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머리가 숙여지는 책이다.
그의 믿음과 진실의 정체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그것을 깨닫고자하는 욕망이 황량한 전쟁터를 무대로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폭격 당한 교회의 종이 바람을 맞아 수시로 울리면서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갖춘다.
책에서 재미있는 인물이 이 대위의 상관으로 비기독교인인 정보부장 장 대령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스럽지만 여러 작중인물 중에서 가장 진실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다.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꿰뚫어보는 장 대령이지만 누군가 돌봐줄 자가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 나오는 군의관 민소령은 신목사가 자기 신도들을 위해 남으로 피난가지 않듯이 부상당한 국군들을 위해 북에 남는데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이 사람은 또 다른 모습의 순교자라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 속의 믿음은 개인의 신념과 대치시켜도 되겠다. 강렬하고 격정적이며 또 정열적인 ‘순교자’는 출판 당시 비평가들의 격찬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겸손한 행위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처럼 말이다. 그러니 모두가 왕들인 인간들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다.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고마워하고 있는 것이 잠시나마 내가 겸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머리 숙일 때면 내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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