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이탈리아의 미남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86세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본 나는 “아 그가 마침내 갔구나”하면서 나의 소년시절을 떠 올렸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한 때 학교보다 음악감상실을 더 열심히 다녀 감상실 주인이 내게 개근상을 줘야겠다고 농담까지 했었다. 그 때 내가 팝송 틈에 간혹 끼어 나오는 테너의 아리아를 처음 들은 것이 디 스테파노였다. 창공을 찌르듯 서 있는 높은 침엽수의 모양과 기상처럼 고고하고도 튼튼하고 신선한 음성이었다. 무엇보다 서정적이어서 한창 감상적이던 나를 사로 잡았었다.
내가 제일 먼저 들은 아리아는 그의 대표적 아리아 중 하나인 ‘토스카’의 성당 화가 카바라도시가 3막에서 총살당하기 직전 감옥에서 부르는 청승맞을 정도로 비감한 ‘별은 빛나건만’이었다. 나는 지금 디 스테파노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의 구절구절을 유려하게 넘어가는 창법이 경탄할 만하다.
그의 노래에 감탄한 나는 그 후 ‘오 돌치 바치오 랑귀데 카레체’(오 달콤한 키스여 나른한 애무여)로 시작되는 부분부터 카바라도시가 애인 토스카가 그립고 죽음이 두려워 “우후후”하고 통곡하는 끝 부분까지를 외워 가끔 나 혼자 노래 부르곤 했다. 디 스테파노가 불러 내가 또 애청하게 된 노래가 역시 ‘토스카’ 1막에 나오는 ‘오묘한 조화’다. ‘레콘디타 아르모니아’(직역을 하면 ‘숨겨진 조화’)는 카바라도시가 성당 초상화로 마돈나를 그리면서 마돈나와 토스카가 닮았다며 자기 연인을 찬양하는 노래다. 어릴 때 처음 들은 감동이 지금까지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노래다.
디 스테파노로 인해 나는 테너인 마리오 델 모나코와 리처드 터커 등도 알게 되었고 소프라노인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 등도 듣게 되었다. 스테파노처럼 벨칸토 창법을 구사하는 유시 뵤를링과 베니아미노 질리의 노래를 애청하게 된 것은 대학엘 들어가서였다.
디 스테파노는 리릭 테너여서 데 그루(‘마농’)와 네모리노(‘사랑의 묘약’)와 베르테르 및 로돌포(‘라 보엠’)의 아리아와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중 로맨스 같은 고운 노래들을 부를 때 듣기가 좋다. 내 감성 때문인지 아니면 디 스테파노를 어릴 때 처음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리릭 테너의 미성을 듣기 좋아한다. 내가 디 스테파노를 롤 모델로 여겼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를 플라시도 도밍고의 노래보다 더 즐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혹 평자는 디 스테파노의 목소리는 곱지 못하다고도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살뤼! 드뫼르’(‘파우스트’)를 비롯한 그의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새삼 그의 기민한 테크닉과 멋진 스타일, 그리고 굴곡이 분명한 창법에 빨려들게 된다. 어쩌면 어렸을 때 LP 재킷 표지에서 본 잘 생긴 디 스테파노의 얼굴(왕년의 할리웃 미남 스타 타이론 파워를 생각나게 한다)이 내가 그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데 일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실리에서 태어난 디 스테파노(1921 ~2008)는 1939년 군에 징집됐으나 그의 우렁찬 음성에 감탄한 소대장 때문에 전선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는 후방에 남아 군 위문공연을 했는데 러시아 전선으로 떠난 자기 부대 병사들 중 생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테파노는 자기 생명의 은인인 이 소위의 사진을 평생 자기 책상 위에 놓아두었었다고 한다.
디 스테파노는 나치가 이탈리아를 접수하면서 스위스로 도망갔다가 종전 후 귀국했다. 라 스칼라 데뷔는 1947년 ‘마농’으로 그리고 메트 데뷔는 1948년 ‘리골레토’로 했는데 메트에서 1948년부터 65년까지 총 112회 공연을 했다.
디 스테파노가 칼라스를 만난 것은 1957년. 둘은 그 뒤로 오페라계의 전설적 동반자가 돼 함께 순회공연을 하고 수많은 레코드를 남겼다. 둘은 1972년부터 1977년 칼라스가 사망할 때까지 연인관계였다고.
디 스테파노는 비록 장수는 했지만 그의 죽음은 지난 2004년 그가 자기 별장이 있는 케냐에서 아내의 목걸이를 강탈하려는 강도들에게 대항하다 입은 심한 머리부상이 촉진시켰다. 그는 그 후 100% 지체부자유자로 생활해 왔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CD(사진)는 런던(London)이 출반한 ‘위대한 음성’(Grandi Voci)이다. 푸치니, 베르디, 비제, 구노, 도니제티, 마스네, 지오르다노 및 보이토 등의 노래가 수록됐다. 내가 좋아하던 옛날 배우나 팝가수나 클래시칼 가수 등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다정했던 연인이나 친구를 잃는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해지곤 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