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서면서 히틀러는 ‘문화전쟁’을 선포하고 유대인 음악가들을 ‘퇴폐음악’의 장본인들로 지목, 핍박을 가했다. 유대인 혐오자인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순수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유대인 음악가들뿐 아니라 현대음악과 흑인음악인 재즈도 모두 ‘퇴폐음악’으로 간주, 작품 활동과 연주를 금지시켰었다.
죽은 멘델스존과 말러의 음악도 금지곡이 됐고 당시 작품 활동을 하던 현대음악 작곡가들인 폴 힌데미트, 알반 버그, 안톤 베베른 및 아놀드 쇤버그 등의 음악도 모두 ‘퇴폐음악’의 멍에를 써야 했다. 그래서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많은 유대인 음악가들은 미국으로 탈출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브 송 ‘9월의 노래’를 작곡한 쿠르트 바일과 에롤 플린이 주연한 ‘로빈 후드의 모험’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할리웃 영화음악의 구축자였던 에릭 볼프강 콘골드 및 힌데미트와 쇤버그 등 작곡가와 브루노 발터와 오토 클렘페러 같은 지휘자 등이 모두 망명자들로 이들은 미국의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남겼다. 음악가들뿐 아니라 할리웃의 명장으로 이름을 남긴 영화감독들인 빌리 와일더와 프리츠 랭과 프레드 진네만 그리고 배우 마를렌 디트릭 등도 모두 나치를 피해 조국을 탈출한 사람들이다.
국외로 탈출하지 못한 유대인 작곡가들 중 일부는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을 하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히틀러가 이렇게 유대인 작곡가 음악과 현대음악을 핍박함으로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해온 독일음악은 말러 이후 2세대에 걸친 대가 끊어져 버렸다.
LA 오페라가 지난해부터 ‘되찾은 목소리들’(Recovered Voices)이라는 제하에 공연하고 있는 오페라들은 바로 이런 나치에 의해 핍박 받아 수십년간 빛을 못 봤던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는 LA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콘론의 이들 음악에 대한 정열적인 헌신의 결과이다. 콘론은 나치 핍박의 피해자들인 작곡가들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생시켜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뜻으로 이 시리즈를 마련했다.
지금 LA 오페라가 공연하는 ‘되찾은 목소리들’ 시리즈의 두 작품 ‘깨어진 항아리’(The Broken Jug)와 ‘난쟁이’(The Dwarf)를 더블 빌로 얼마 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관람했다(8일 하오 7시30분 마지막 공연). 둘 다 1막짜리로 내용과 멜로디와 가수들의 노래 그리고 세트와 한국계 린다 조가 디자인한 의상 등이 모두 좋았다.
사회풍자극인 ‘깨어진 항아리’는 체코 태생의 유대인 작곡가 빅토르 울만의 작품. 울만은 이 곡을 나치에 체포돼 수용소에 수감되기 직전 작곡했는데 그는 테레진 수용소에 수감중 20여편의 작품을 썼다. 울만은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깨어진 항아리’는 풍자 코미디로 낭만파 음악에 현대적 뮤지컬을 가미한 듯한 작품이다.
이 작품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것이 ‘난쟁이’(사진)다. 이 곡은 20세기 현대음악의 태두인 비엔나 태생의 알렉산더 젬린스키가 썼는데 현대적이나 후기낭만파 음악의 멜로디를 갖춘 음악이 수려하고 준수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내용도 가슴을 파고들듯 드러매틱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는 평생 거울을 보지 않아 자기의 흉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난쟁이의 정열과 사랑, 현실 자각과 그로 인한 비통한 죽음에 관한 비장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18세기 스페인 국왕의 딸의 18세 생일선물로 주어진 난쟁이와 공주의 관계(쾨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를 통해 외적 미와 내적 공허 그리고 외적 추함과 내적 영성을 대비했는데 젬린스키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졌다.
말러와 같은 동아리에 속했던 젬린스키는 비엔나에서 젊고 아름다운 음악학도 알마 쉰들러를 만나 둘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알마는 젬린스키의 강한 개성에 강렬한 매력을 느끼면서도 결국 키가 작고 못 생긴 그를 버리고 말러와 결혼했다. 젬린스키는 이 실연의 상처와 자기 외모의 추함 때문에 수십년간 고통하다가 이 작품을 작곡했는데 그는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탈출, 상심에 젖어 살다가 1942년에 사망했다.
‘미녀와 야수’의 거꾸로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오페라의 이 날 공연은 난쟁이역의 흑인 테너 로드릭 딕슨의 원맨쇼와도 같았다. 맑고 곱고 찌르는듯한 음성으로 공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절망적 아픔을 노래했다. 자기의 참 모습을 보고 심장이 터지도록 통곡하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자니 목구멍에 덩어리가 맺혔다. 경이롭도록 색다르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