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를 들으려면 사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 얼마 전 LA 다운타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된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olde)를 보러 가기 전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예습을 했다. 우선 역대 최고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콤비 중 하나로 꼽히는 존 비커스와 비르기트 닐손이 노래 부른 CD를 대여섯 번 정도 들었다.
이 CD는 197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아트로 콜론에서 공연한 것을 생으로 녹음한 음반이다. 이 3막짜리 오페라 중에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오페라의 말미를 장식하는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Liebestod)을 듣노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랑의 노래 중 이보다 더 아름답고 정열적이며 또 비극적이요 선험적인 것도 없다.
다음으로는 바그너광인 내 친구 C에게 이 오페라에 관해 몇 자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배리 밀링턴의 책 ‘바그너‘를 인용, 작품 속 사랑은 단순한 절대적 사랑의 찬가도 또 사랑의 이상화도 아니며 모든 현실과 경험의 세계를 이탈한 형이상학적 영역의 사랑이라고 적어 보냈다.
그는 이어 바그너는 세상으로부터의 구원과 해방의 방법을 생에 대한 의지의 포기로 제시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의거,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현상적 존재를 포기하여 실체적 존재로 환원하는 죽음으로 결론지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2막에서 장장 40여분간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부르는 2중창 ‘오! 우리에게 내려오라, 사랑의 밤이여’의 대사를 글에 추가했다. 이 2중창은 두 연인이 사랑의 정열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사랑의 묘약을 마셨으니 당연하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요 이졸데는 트리스탄이라며 서로가 하나가 되는가 하면 “어떻게 죽음의 힘이라도 사랑을 흔들리요”라며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구가하고 있다. 천상의 음악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영육을 완전히 소모시키는 사랑이란 오로지 저세상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간직하고자 한다면 사랑의 당사자들이 죽어서 세상을 초월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찬미다. 이 오페라는 사랑만을 위해 살려고 죽는 두 연인의 영원을 향한 초월과 해탈의 과정을 동양사상과 로맨티시즘으로 채색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제약에서 해방돼 선험적인 공간으로 올라가 불멸의 사랑을 완성한다. 이런 죽음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는 영적인 의미 때문에 나는 이 오페라를 들을 때면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죽음과 정화’를 연상하곤 한다.
이 오페라는 심오한 영적 경험일 뿐 아니라 또한 육감적이요 에로틱하다. 2막의 듀엣을 들으면 정열적 사랑의 말들의 ‘오지’(분탕질)와 함께 육체적 쾌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철학적 언어로 사랑의 영적 육체적 환희와 고뇌 그리고 슬픔과 죽음을 통한 불멸을 노래한 로맨틱한 오페라다.
현재 공연중인 ‘트리스탄과 이졸데’(3, 6, 10일 세 차례 공연이 더 있음)는 영국의 화가 데이빗 호크니가 디자인한 무대장치와 의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눈을 찌르는 듯한 원색들을 쓴 무대장치는 마치 살아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입체감을 준다.
그리고 극중 인물들의 의상은 내가 옛날에 본 중세 기사들의 영화 ‘흑기사’와 ‘원탁의 기사’들에 나온 인물들을 생각나게 했다. 호크니의 디자인은 LA 오페라의 1987년 공연 때 처음 사용됐고 이어 1997년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나는 1997년에 같은 장소에서 이 오페라를 봤는데 이번에 느낀 감정적 기쁨은 전번만 못했다. 이졸데역의 린다 왓슨은 그런대로 노래를 잘 불렀으나 트리스탄역의 존 트렐레븐은 헬덴 테너라고 부르기엔 역량이 달렸다.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바톤아래 LA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은 매우 좋았지만 오페라는 전반적으로 정열과 힘이 결여된 것이었다.
극적 죽음을 오페라적 죽음이라고 부르는데 이같은 죽음의 전형적인 것 중 하나가 제3막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죽음(사진)이다. 칼 맞은 트리스탄은 죽었는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나고 이를 반복하면서 죽는데 거의 1시간이 걸린다.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이 이졸데의 죽음으로 이졸데는 근 10분간 ‘사랑의 죽음’을 간장이 끊어지듯 노래 부른 뒤 님을 따라간다. 둘은 저 세상에서 만나리라.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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